자신에게는 맞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그가 보는 시각에 따라 모양이 달리 보인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몇 해 전 집으로 커다란 택배 하나가 배달되어 왔다. 직접 키운 양배추와 이것저것 몇 가지 과일과 채소를 섞어 즙을 내었다는 어머니는 10kg 감자 박스에 꽉꽉 채워 한 박스 씩 각 자식들 집에 부쳤다고 했다. 평소 위장이 약한 편이었던 나는 그것이 퍽 달가웠다.
하지만 양배추즙을 며칠 집어먹고는 나는 중도 포기선언을 하고 말았다. 양배추즙을 먹은 지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갑자기 나의 몸에 원인 모를 두통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눈을 뜬 아침부터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 어지럽더니 얼마 안 가 속을 게워내야 할 만큼 증상이 악화되었다. 멀미가 온 것 같은 두통은 종일 나아지지 않았고 서 있지도 못할 정도가 되어 나는 하루 내내 앓아누워 있어야 했다. 그 후 그런 증상이 한번 더 반복이 되었는데, 때문에 나는 양배추즙을 다시 먹기가 여간 겁이 나는 게 아니었다. 남은 팩이 족히 서른 개는 더 되어 보였는데 그 양배추즙 전부는 결국 나의 것이 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의 그런 사정과는 달리 동생네에서 그 양배추 즙은 인기리에 섭취 중인 보약이 되었다고 했다. 특히 제부는 맛도 좋고 배변활동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좋은 양배추즙을 보내주신 장인장모님께 고마움을 연발했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것이 있고 그건 사람마다 전부 다를 수도 있다.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란 삼 남매는 각자의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렸다. 그건 한 뿌리를 가진 나무에서도 제각각 다른 곳을 향하여 뻗은 나뭇가지와 같은 이치의 것이었다.
오랜 방황으로 가족들을 무섭게 떨게 했던 오빠는 어머니의 소개로 갔던 선교지에서 새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 후 아들 하나, 딸 하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애써 노력을 한다. 술을 즐겼던 과거의 자신도, 어머니를 원망했던 마음도 모두 내려놓고 남편과 아버지라는 책임감이 따르는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 한다.
동생은 소개팅으로 제부를 만나 몇 해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그다음 해 공무원이 되었다. 또 그다음 해 계획하에 아이를 낳고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무리 제부와 함께 한다지만 육아가 힘이 들었는지 전보다 날씬해진 몸매로 “아유, 난 두 명은 못 키우겠어. 예린이만 잘 키워봐야지” 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하곤 한다.
나는 세 번째 연애 때 지금의 짝꿍을 만나 함께 살고 있다. 각자의 사정으로 경제적 직격탄을 맞은 우리는 그동안의 인생에서는 다시없을 고난을 함께 헤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두 마리의 고양이와 두 마리의 강아지를 기르며 함께 하는 삶을 의미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가족은 한때는 함께 모여 살지라도 결국에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 자신만의 길을 가야만 하는 때를 맞는다.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기 손으로 매듭지어야 하는 그의 운명이 있는 법이다. 그건 아무리 가깝게 지냈던 가족일지라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지독히 개인적이고도 가슴 벅찬 개개 인생의 숙제인 것이다.
유난히 비슷하게 생겼던 우리 다섯 식구는 사람들에게 붕어빵처럼 닮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하지만 외형이 틀에 찍어낸 듯 닮았다고 해서 사는 인생까지 닮아 있는 건 아니었다. 삼 남매에게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모조리 자신에게는 맞고, 그리고 타인과는 너무도 다른 그런 인생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인생들을 한데 모아보면 음악이 흐를 것 같다고.
각각의 음이 너무나 이질적이지만
그럼에도 매우 조화로워
신비하게 아름다운 하모니가 들리는 것만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