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하는 사람의 마음이 무거워야 할까, 부탁받는 사람의 마음이 무거워야 할까? 둘 다 쉽지 않겠지만 굳이 그 책임감의 무게를 따진다면 난 부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한 지 2년쯤 됐을 무렵, 남편 사업이 안 되면서 하루 쓸 생활비도 없던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전화했는데, 모두 거절당하고 한 친구만이 이유를 묻지 않고 돈을 부쳐주었다. 30년 전 200만 원이면 정말 큰돈이었는데도 말이다. 거절당했을 때 느낀 부끄러움과 자괴감은,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생기게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부탁을 들어준 그 친구의 따뜻한 마음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배려해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2년을 꼬박 모아 그 돈을 갚던 날, 친구는 말했다. “난 그냥 준 건데….” 받을 생각도 안 하고 내 부탁을 들어준 그 친구를, 그때의 우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부탁을 너무 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간단한 심부름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부탁쯤이야 상부상조한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불편함을 빨리 해결하려고 쉽게 남의 도움을 요구한다. 상대방이 충분히 들어줄 만하다고 생각되면 더 쉽게 요구한다. 내 이익을 위해 부탁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되면 인간관계의 신뢰는 깨지고 만다. 지위를 이용한 부탁이 청탁과 갑질이 되고, 인간관계의 우위를 이용한 부탁은 괴롭힘이 된다. 부탁이 오고 가는 불편한 관계는 가족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돈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부탁이란 내 짐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놓는 게 아니라 함께 질 수 있겠냐고 물어보는 일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해결할 테니 조금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말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부탁했는데도 거절당했다면 그 관계는 끊어도 좋다. 그런 마음으로 하지 않는 부탁은 거절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