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인전 선정 작업을 하게 되는데, 오랜 시간 그 일을 하면서 깨닫게 된 건, 한 인물이 일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위대함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려서 읽은 위인은 때론 허풍과 과장이 섞이고, 검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긴 했어도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 역사적인 측면에서 그 업적만은 높이 평가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한 인물의 위대함은 업적만이 아니라, 업적 뒤에 숨은 인격과 태도, 도덕성까지 살펴봐야 한다. 존경은 전 생애를 걸쳐 살아온 모든 발자취 속에서 얻어지는 명예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는 함부로 위대함을 논하는 건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가 존경하는 많은 사람 중에 소개하고 싶은 오늘의 주인공은 스콧 니어링이다. 그는 종교인도 아니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부유한 미국 가정에서 태어나 촉망받는 경제학자였지만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반전, 반자본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다. 그는 모든 권력의 지위에서 쫓겨나고 배제되었지만, 언제나 사회와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았다. 배움을 멈추지 않았고,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 나갔으며 검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평생에 걸쳐 실천했다. 버몬트 주로 들어가 부인과 함께 자신의 노동으로 생계를 이루되, 반나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거나 명상했다. 한 해 먹을 것을 수확하면 더 이상 욕심내지 않았다. 그리고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다.
젊어서는 패기 있게 부조리에 맞서다가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신념을 잃기 쉽고, 사회와 친구가 모두 등을 돌리면 인간관계에 환멸을 느껴 고집스러워질 수 있으며, 불투명한 미래와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언제든 나약해지고 허무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그가 전 생애를 통해 보여준 열정과 겸손의 삶은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봉사나 희생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로 깊은 신뢰와 사랑을 보여준 그를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