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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by 혜랑

용기가 슈퍼맨 정도는 돼야 낼 수 있는 기운이라면, 젊은 날 목숨 걸고 시위대에 참가했던 날이 생각난다. 80년대는 그야말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거세된 때라, 당시 대학생이던 나도 함께 투쟁이 나섰다. 죽을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무고한 사람들이 폭력에 의해 죽어 나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회인이 되어 경제 전선에 뛰어든 후로는 그저 먹고살기 바쁜, 나 하나 온전히 책임지는 것도 버거웠던 날들 때문에 다른 것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삶에 용기 있던 날들은 사라진 듯 보인다. 정말 그럴까?


초등학생에게 용기가 필요한 때가 언제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학생들의 대답은 단순했다. 친구에게 사과해야 할 때, 싫어하는 음식이지만 먹어야 할 때, 게임 하고 싶지만 참고 공부해야 할 때, 친구를 도와줄 때, 거짓말하지 않고 진실을 말할 때 등이었다. 어린이의 삶에서 겪는 모든 과정에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 어른이라고 다를까? 회사 가기 싫지만 나가야 하고, 밥 차리기 싫지만 해야 하고, 실수를 인정해야 하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거짓이 없어야 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내용이 조금 바뀌었을 뿐 살아가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용기들이 필요하다.


어른이라면 으레 이런 것은 당연한 의무와 책임이라고 생각하기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어른도 사람이고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면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어른은 어린이보다 더 크고 많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거짓을 숨기는 법도 노련하다. 허용되는 범위도 나름 많아져서, 원칙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용기는 살아가는 힘이고 살아내는 힘이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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