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 없는 인생이 있을까?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3학년 때 담임선생님 찾아뵙겠다고 나가서는 영화관에 걸려있는 액션영화의 유혹에 빠져 옆길로 샜고, 중학생 때는 친구들과 미팅하러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도망쳐 친구랑 놀고, 선배들이 사준 백일주도 마셨다. 대학생이 되자 일탈은 점점 수위가 높아져, 시위하러 다니느라 수업 빼먹기 일쑤고, 날이 좋은 날엔 여자 동기들끼리 땡땡이를 치며 낮술을 먹었다. 대학생 때까지 내가 누린 일탈은 호기심과 반항, 열정과 치열함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일탈은 쉽지 않았다. 쉬는 날은 정해져 있고, 주어진 환경은 너무 뻔하고, 한 번의 일탈이 가져올 파장이 너무 컸다. 결혼하면서 일탈은 더 어려워졌다. 일상이 빡빡할수록 일탈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졌다. 직장과 가정에서 벗어나 동아리 활동이나 모임, 운동, 여행, 문화생활을 한다 해도 그건 언제나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대학생 때까지의 일탈이 한없이 뻗어나가는 직선의 자유를 닮았다면, 어른이 된 후의 일탈은 끝과 끝이 정해져 있는 선분을 닮았다. 젊어서의 일탈이 모험이었다면, 어른의 일탈은 안정을 위한 쉼표 같은 거였다.
그런데 이런 일탈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했다. 공황장애에 걸린 것이다. 언제, 왜 생겼는지 정확한 이유는 못 찾았지만, 처음 발견한 것은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갈 때는 간신히 버텼는데, 돌아올 때는 너무 힘들어서 승무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증세는 점점 커져 어느 날엔 전철을 탈 수 없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도 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혼자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결국 병원을 찾아갔다. 더 진행되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공황장애는 단순한 일탈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병이다.
그러고 보면 일탈은 참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의지로 새로운 경험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은 작든 크든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