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몫을 살기 위해 태어났을 테니 말이요
여성들이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라.
“상사람이고 양반이고 간에 앞으로는 사람의 생각들이 달라져얄 게요. 선영봉사(先塋奉祀)하기 위해서 사람이 세상에 나온 것은 아니고 제 몫을 살기 위해 태어났을 테니 말이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조상에 사로잡혀서 귀신이 활보하는 격이지. 그러니까 뒷걸음질만 치고 앞서 나가려 하질 않거든요.”
토지 2부3권 367쪽에서 인용/ 마로니에북스
공노인과 임역관의 대화 중, 공노인이 후사를 이어갈 자식이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역관이 하는 말이다. 얼마간은 임역관이 공노인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로 들리기도 하나, 임역관의 말을 빌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영봉사라는 말은 '선영'은 조상의 무덤 혹은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을 말하고, '봉사'는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것을 말한다. 유교가 일반 백성들에게 가르친 예(禮)중에서 으뜸이 조상의 묘 지키는 것과 선영봉사 하는 것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 선영봉사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후사를 보아야 하는데 그 것이 아들이어야 했다. 그런 의식 때문에 여성이 받았던 차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명절이나 기일이 되면 조상 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은 ‘미풍양속’이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자식 세대들이 맞벌이를 하는 요즘에 제사문제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여성들이 결혼을 할 때, 제사 없는 집을 선호한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신랑감이 제사의무를 지는 맏이인 경우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는 명절 후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는 기사가 나온지 오래되었다.
본래는 조상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의미로 지내던 제사가 불편한 의식이 되어 버렸다. 제사 풍속은 오늘날 간소화 되거나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인 일반적인 견해다.
‘사람이 선영봉사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제 몫을 살기 위해 태어났다.’는 작가의 말은 아주 앞서간 생각이었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참으로 맞는 말이다.
결코 부모에 대한 효를 가볍게 생각해도 된다거나, 조상 제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전통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인데,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모든 제사 의식을 위한 음식들이 선영봉사의 의무를 지고 있는 그 아들과 결혼한 여성들의 손으로 마련된다. 오래된 전통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들이 현대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개선된? 방식으로 조상님들께도 공경을 드리고, 자기 몫의 삶도 멋지게 살아가는 신세대 여성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여성들이여,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