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손을 내민 적인 있을까?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 적이 있을까?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타인보다 자신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어느 날 속삭이듯이 걸어온 소중한 감정을 마주했다. '타인은 나밖의 또 다른 나'라는 문장을 만나던 날은 잊히지 않았고 그날의 속삭임은 내 뇌리 속 깊은 서랍 안에 각인되어 존재한다.
책 속에서 만난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순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을 위한 행위이며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과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인간이 워낙에 이기적이어서 신은 내 몸을 통한 출산을 통해 부모라는 이름을 주었고 아이를 잉태한 이유가 타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베풀 수 있는 존재의 삶을 살게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타인의 아이에게는 경계를 하지만 내 자식은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게 된다. 참 신은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인간에게 사랑을 베풀게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비뚤어진 이기심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세상의 경계를 짓는 자신만의 왕국을 무너트리지 못한다. 결국 그 과보로 자식으로부터 버림을 받던가 집착이라는 소용돌이 속에 갇히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어떤 물건도 소유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면의 충만을 가꿀 필요가 있다. 내면의 사고를 훔쳐갈 수 있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힘을 쏟아붓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길 바란다. 인간의 이기심 안에는 분별심이 작동한다. 내가 타인에게 무언가를 베풀면서도 그 대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니 나의 도움이 타인의 마음속에 가서 정착하지 못하고 돌고 돌아 자신의 가슴에 비수와 같은 아픔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자녀 또한 타인임을 인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 인간은 홀로 존재한다. 그 외로운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니 서로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공존할 수 있어야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가치 있게 가꿀 수 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자신이 잘나서 그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배려와 희생 위에서 피어난 한 송이 외로운 꽃과 같다. 그 한 송이 한 송이들이 어우러졌을 때 안정감이 피어나고 그 어떤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존재로 피어나는 것이다.
멀리 가거나 특별하게 기여하려고 하지 않아서 된다. 가족도 타인임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가족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허물을 감싸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언가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부모라는 이름하에 복종과 굴림을 행사하지는 않았는가? 결코 부모라는 이름이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누구나 평등한 존재이며 지켜져야 하는 적정선으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다.
타인을 바라보며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타인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식에 가까울수록 내 마음의 평온은 찾아올 것이고 편안한 일상 속 존재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여하는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물질적인 그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을 나눌 수 있을 때 자신의 또 다른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