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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육체의 파편

by Sapiens



어느 날 갑자기


그 무엇도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 파도가 밀려와 깎이고 깎이다 보면 내성이 생기듯 아무렇지 않게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기억의 상실을 당연시하게 된다.



딸아이와 간식으로 맥스파이시 햄버거를 시켰다. 오래간만에 먹을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배달된 포장지 사이로 일회용 컵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이 손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톡 쏘는 콜라의 맛을 상기하며 햄버거 포장지를 열었다. 크게 한 입을 물고 씹었다. 첫맛을 느끼며 아작아작 씹던 순간, 아뿔싸! 굉장히 센 무엇이 치아와 부딪힌다. 나도 모르게 뱉어내었다. '툭'하는 소리에 돌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바라보고 있던 딸아이가 "엄마, 이거 이빨 같아." "뭐?" 떨어진 물체를 자세히 바라보다 혀가 닿는 부분에서 거칠다는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입을 벌리고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예전에 땜질한 치아 옆으로 치아가 깨져있었다.



내 치아가 부러진 것이다. 충치부위가 넓어 언젠가 부러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떠오른다. 쓸 때까지 써보고 씌우자고 하셨었다. 참, 오래 사용하였다. 무던히도 참고 참았을 시간이었으리라. 그동안의 시간이 고통이었을 그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아픈 육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떨어져 나간 표면이 날카롭다. 성난 모습을 하고 있는 듯 그에게 조심히 다가가게 된다. 혀와 닿는 부분이 해지기 시작하고 음식 씹기가 불편하다.



우리는 상실의 시기를 겪어봐야 그 자체의 소중함이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때론 잊힘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자꾸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존재의 가치를 잊게 된다.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다른 치아를 지지하며 나의 삶을 평온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아침에 치과를 찾았다. 순식간에 갈아 사라지는 네 모습에 입안의 평온을 찾았지만 네 아우성을 듣는 순간이었다. 석션과 기계소리에 파묻혀 사라지는 네 고통으로 나는 다시 평온한 일상 속으로 걸어간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육체의 파편들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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