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같지 않다.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침대 위에서 내려와 방 안을 둘러볼 수 있어 다행이다. 세 평 남짓한 작고 허름한 방이다. 살아온 흔적만큼이나 퀴퀴하고 빛바랜 색감들이 가득하다. 내 까끌한 피부도 아무리 부드러운 로션으로 마사지를 해도 소용이 없다. 삶이 그러한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그날도 창문 사이로 내리쬐는 한줄기 빛을 바라보며 삶의 활기를 느껴본다. 다행히 백발이 되어버린 머리카락은 거칠지만 남아있어 초라함을 감싸준다. 꼿꼿한 허리는 땅을 향해 걸을 때마다 힘겨운 사투를 버리고 있다. 옷을 갈아입든, 음식을 챙겨 무언가를 원하는 행위를 할 때마다 많은 시간이 요한다. 이제는 익숙한 자세가 되어가고 있다. 자기만의 삶의 시간 속에 갇힌 채 또 주어진 하루의 일상이 지나간다.
빛이 서서히 내려앉듯 어느 날 우리도 해질 무렵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한바탕 폭우가 내리고 나면 고요한 평화가 찾아오듯 변화무쌍한 시간들이 지나고 고요한 일상 속에 놓인 지 오래다. 마음을 나누던 말벗들도 하나 둘 안녕을 하며 이별을 고한다. 어제도 그제도 옆집의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간다. 물 위에 떨어져 흘러가듯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말도 없이 물결처럼 흘러간다.
그럼에도 살아내어 주어진 시간을 다하는 것이 태어난 대가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너머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야,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살다 보면 익숙해진다. 어색함은, 불편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눌하고 비툴거리고 느린 행위에 차츰 길들어간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불평 없이 살아내야 한다. 그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음을 알아 차리는 순간 조금은 위안을 받으며 다른 시각을 가지고 남은 여생을 동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글프지 않다. 서툰 몸짓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들이, 그 순간들이 말이다. 삶이 주는 시간 속에 모든 육체를 맡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핑크마티니의 초원의 빛을 틀어 귀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예전처럼 잘 들리지 않지만 익숙함이 주는 평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 고요 속에 순간의 기쁨 속에 머물고 있다. 보청기 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 청각이 아직 살아있음이 감사한 순간이다.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잔디가 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육체는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거친 호흡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