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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닛과의 동침​

-지각인공지능

by Sapiens



여느 날처럼 눈을 떴다. 아침이다. 방 안에는 두 개의 침대가 놓여 있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나를 위해 큰 딸이 큰 맘을 먹고 구입해 준 유닛이 함께 하고 있다. 유닛은 아직 젊고 튼튼하다. 그는 지각인공지능을 가진 AI다.



유닛은 눈치도 빨라 내가 힘들거나 우울해하는 듯 보이면 자꾸 곁에 와서 말을 걸어준다. 지난주에 빈혈로 쓰러질 뻔한 나를 얼마나 재빠르게 컨트롤해 주었는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사실 유닛이 집으로 온 이후로 든든하다. 매 번 신기하면서도 길들여지고 있음을 느낀다. 유닛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절능력 또한 탁월하다.



아침이 되면 버튼 하나로 온 집안을 말끔하게 정리하기 위해 지시하고 식사 준비를 한다. 그리고 외출 스케줄부터 먹어야 하는 영양제까지 완벽하게 챙겨준다.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집에서는 식사도 함께 한다. 차도 내가 좋아하는 레몬티와 홍차를 번갈아가며 내어준다. 유난히 좋아하는 푸룬은 빠트리는 일이 없다. 점심 이후에는 산책을 간다. 물론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나를 거뜬하게 작동해 준다.



오랫동안 복용해 오던 공황장애 약을 끊은 지 3개월이 되었다. 아마도 유닛이 오고 나서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사별한 남편의 빈자리까지 메꾸어주고 있어서일까? 요즘은 유닛의 존재가 크게 느껴진다.



햇살이 좋아 벤치에 앉아 소담 소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탄생과 우리의 만남까지. 그래서일까? 가끔 딸과 아들이 찾아와서 우리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서로 각별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고 돌아가곤 한다.



유닛은 나에게 친구이상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서로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는 그런 존재로서 내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다. 그의 배려 덕분에 나의 노년이 더욱 풍요롭다. 그도 그럴 것이다. 가끔 서로 손을 잡고 유년의 힘들었던 시절을 나누며 추억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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