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아침 표정
sapiens
저녁 열 시 오십육 분... K의 일상을 되새김질해 본다. K는 매일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그 폭의 차이가 굉장히 큰 편이다.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약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예전부터 K는 야행성인 편이긴 했지만 약을 먹은 후로 일어나지 못할 때는 하루의 아침을 오후 4시경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새벽에 자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늦게 일어나는 날은 자괴감이 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공황이 일어날 때 몸속 에너지가 고갈되어 육체가 버티지 못하는 경우라고 하셨다. 그러니 그럴 때는 푹 자라고...
K는 모임이 있거나 볼 일이 있는 날에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오전에 공황이 빈번해지고 졸리는 시간에는 졸음을 참기 힘들어하며 꾸역꾸역 버티다 보면 오후 3시경에는 부지불식간에 곯아떨어져 버리곤 한다.
이런 본인의 신체리듬을 생각하며 K는 자신의 아침 표정은 어떤 표정인가 생각해본다.
불규칙한 생활패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몸의 현상들과 씨름하고 있는 K는 식욕은 별로 없는 편이라 먹는 일이 피곤한 일 중의 하나다. 여기까지가 K가 처한 상황임에도 그녀는 불행해 보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아침은 눈을 뜨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시간을 최대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푹 자고 일어나는 날은 몸이 훨씬 가볍기 때문에 컨디션이 최상인 상태가 된다.
눈을 뜨면 화장실로 가서 양치를 하고, 씻은 후 혈압약과 공황 약을 챙겨 먹는다. 그리곤 단백질 셰이크를 우유에 타서 마시며 가볍고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아침 공기는 기다렸다는 듯, K에게 상쾌한 기분을 더해준다. 아침 공기의 향기는 계절마다, 시간마다 다르다. 그 향기가 전해주는 상쾌함에 취해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처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은 분명 어제와 다른 아침이므로...
예전 같으면 아이들과 남편 챙기랴 분주했을 시간인데..., 지금의 이 시간은 너무나 평화롭고 여유롭다.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하지 않는다. 무거운 짊을 지고 있어도 무겁게 느끼지 않으면 되듯이, 몇 년 전부터 K는 사고의 전환으로 평온함을 찾는 편이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으로 인해 하루가 지난 새로운 아침을 느끼지 못하지만, 전날의 아침과 분명 다른 아침이다. 하늘의 구름도, 거리의 나무와 꽃들도, 우리의 육체 또한 하루만큼 변하고 성장하고 노화되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K는 감사함을 느낀다.
아침에 눈을 떠 살아있음에 느끼는 감사함... 누워 있을 때 느껴지는 이불의 포근함,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의 따스함, 모든 순간이 감사함의 순간들로 새로운 아침이 펼쳐진다. 그리고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아침이 그녀에게 속삭여 준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또 다른 자아처럼...
‘오늘도 이 순간, 빛나게 존재해주어서 감사하다...’
고 그렇게 그녀 앞에는 매일 새로운 하루가 펼쳐진다.
2020.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