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볕
너
sapiens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콧물이 흘러내렸다. 어제는 아침저녁으로 모임이 있어 분주한 하루를 보낸 탓이었는지 오래간만에 찾아왔더구나. 그렇지 않아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나를 방문할 때가 되었다고, 그렇게 며칠 전 네가 문득 생각이 나기도 했었단다. 용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힘겹게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 보니 불청객처럼 너와 마주한다.
기운이 없어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침대 위 이불속에 축 늘어져서 헤매다 보니 침대 매트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듯했다. 내 육체의 한계를 느끼며 시간을 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어지러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왔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도로 위로 겨울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몸을 움츠리고는 양팔로 가슴을 감싸고 있었지만 온 몸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와 히터 텍 내의를 꺼내 입었다. 겉옷으로 회색 앙고라 니트에 회색 기모 운동복을 챙겨 입고는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아 둘렀다.
사실, 항상 네가 방문하는 날이면, 나는 네가 빙의된 내 육체를 주치의에게 데리고 가서 너를 보내는 굿을 해야만 했지. 보통 이삼일 정도는 너와 동고동락을 하며 시간을 최대한 끌어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상태가 되었을 때가 되었을 때, 주치의를 만나러 갔었지.
하지만 오늘은 네가 유난히 눈물을 많이 흘리는구나. 마치 비가 유리창에 향해 쏟아 내리듯 흘러내리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화장지 한 칸을 떼어내 반으로 자른 후 돌돌 말아 콧구멍 크기의 기둥을 만들어서는 양쪽 콧속에 하나씩 쑤셔 넣었다. 좀 괜찮나 싶다가도 이내 곧 흥건히 젖어 더 이상 숨을 쉬기 조차 힘들다. 그렇게 화장지를 넣었다 뺐다를 수십 분간 반복한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찾아온 너였지만, 나는 너를 만나자마자 너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편한 운동화를 챙겨 신고 아파트 펜스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찬 공기가 코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폐포 속까지 들어와 몸의 한기로 내뿜어내고 있다. 마침 겨울바람이 양쪽 귀를 스치더니 머리카락이 서로 부대끼며 흩날린다. 그렇지만 머리 위로 볕이 내리쬐고 있어 그리 나쁘지 않다.
겨울 볕은 다른 계절의 볕과 사뭇 다르다. 예전엔 미처 느끼지 몰랐던 사실이다. 볕의 숨결이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오전 열 시. 12월의 찬 공기 속에서 내리쬐는 볕은 움츠린 내 마음과 육체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술과 같다. 일상의 무심했던 볕이 오늘은 특별히 다르게 느껴지고 반가운 이유는 인간의 간사함인지도 모르겠다.
볕, 너는 항상 내 주위에 있었는데 내가 힘드니 네가 보이고 네가 특별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하고 있는 겨울 하늘에서 내리쬐고 있는 볕, 너는 나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약을 처방해주는구나!
집에서 병원까지의 십분 거리를 볕, 너와 함께 걷는다. ‘엄마손은 약손’하며 배앓이하는 아이의 배를 쓰다듬어 주는 어머니의 간절함처럼 너와 걷는 내내, 볕, 너는 나의 어깨를 무척이나 따스하게 감싸 안아 주는구나.
콧물, 네가 찾아와서 나에게 볕, 너를 선물해 주는구나!
불청객이 아니라 사랑이었구나.
-2019년 12월 네가 내게 찾아온 날... 그리고 또 다른 너를 만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