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스승이야
천사의 선물
“엄마, 오늘 학교에서 수업 중에 머리가 좀 멍해졌어.”
“어떻게? 어느 정도?”
“아주 잠깐 동안… 지금은 괜찮아.”
“또 그러면 엄마한테 말하렴.”
나는 저녁식사 중에 전하는 아들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평소에 수학학원에서도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할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설거지를 마친 후 침대 위 베개에 기대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책 속 줄거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탁”
나는 ‘무슨 소리지…’ 하면서도 그냥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순간 저녁 먹으면서 아들이 한 말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야!”
“**야!”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헐레벌떡 일어나 아들방으로 달려갔다. 세상에 이를 어째…, **가 책상 옆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본 순간 나의 온몸은 경직되었고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큰 소리로 **를 흔들어 깨웠다.
“**야”
다행히 **는 의식을 차렸고 나는 어떻게 된 거냐고 되물었다.
“아까 학교에서 처럼 머리가 멍해져서 엄마한테 말하려고 일어섰는데 의자 팔걸이에 걸려 넘어졌어.”
그리곤 기절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의아했다. 분명 내가 방에 들어왔을 때 아들은 쓰러져 있었고 흔들어 여러 번 불러서야 일어났는데…. 불안한 마음에 나는 괜찮다는 아들의 말을 뒤로하고 119에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했다. 상황실에서는 또다시 쓰러지면 다시 연락하시고 내일 병원으로 내원해보라 하셨다. 오늘이 금요일 저녁, 내일은 토요일…. 나는 지체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다. 마침 토요일 오전 진료를 한다고 한다. 더 큰 대학병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월요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우린 집 근처 가까운 종합병원 신경외과 외래를 찾았다. 선생님께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어제저녁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였고, 선생님께서는 예전에도 쓰러진 적이 있었냐고 물으셨다. 아들과 나는 동시에
“처음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고, 내가 보기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으며 내가 흔들어 불렀을 때 깨어났다고 말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MRI를 찍고 뇌파를 검사하고 CT를 찍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환자들이 붐비지 않아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모든 검사가 끝날 때까지 **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MRI를 처음 찍어보는 것이라 모든 과정을 신기해했다. 검사가 진행되는 시간 동안 남편과 나는
“별일 있겠어?… 괜찮을 거야!...”
서로 주문을 외듯 말했다. 하지만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눈이 불안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병원에 올 정도로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던 아이라 내심 놀랐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검사가 끝나자,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우린 신경외과 외래 진료실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아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간호사가 **의 이름을 호명하자, 우리 세 명은 진료실 안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의사 선생님께서 가까이 와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라고 권하셨다. 의사 선생님 오른편에 남편이 서 있고, 나는 선생님 왼편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왼쪽 옆 의자에 **가 앉아 있었다.
“자 보시죠. 이곳이 헤마라는 부분이고, 헤마 옆 동그랗고 검은 부분이 보이시죠? OOO입니다.”
이번이 쓰러진 것이 첨이라 하니 약을 먹으면서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으며, 학교에서도 쓰러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놀라 인정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 판독이 정확한 건가요? 누가 봐도 OOO입니까?”
“네, 어머님…”
“어떡해요.. 아직 중2인데… 우리 ** 어떻게 해요?”
나는 **가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선생님을 붙잡고 울면서 떼를 쓰고 있었다.
“어떡해요… 선생님? 어떡해요…. 정말 OOO이 맞나요?”
옆에 앉아 있던 **가
“엄마, 나 죽지 않아요. 괜찮아요. 엄마가 죽을 병만 아니면 괜찮다고 했잖아요?”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우리 **가 옆에 있었구나!’
그 순간 난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아직 꽃도 펴보지 못한 아이인데… 너를 품었을 때 내가 심리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네가 영향을 받은 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안돼!! 이건 아니야…’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남편이 신장암을 진단받았을 때에도 나는 이성적일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이별 덕분에 아픔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은 성숙해졌으리라 생각했으며 어떤 아픔이 와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식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이성이 무너져 내렸다. 혼돈 그 자체였다.
‘어떻게 우리 **가…’
진료실을 나오고 수납 창구 앞에서 나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떡해… 우리 **…’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고, **를 부둥켜안아 흐느꼈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복도 끝 바닥 위에 남편과 아들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아들 **는 참 밝은 아이다.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다. 전자공학 아두이노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고 실험과 요리를 좋아하고 탐정과 추리를 좋아하고 기타를 치면서 흥얼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우리가 준 것보다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는 아이다.
‘왜 이 아이에게 이렇게도 모진 걸까? 내가 잘못 살아서 벌을 주시는 걸까?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온갖 생각에 허우적거리며 그 생각들을 토해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침대 위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듯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나 자신만이 어제의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나의 뇌 속은 뒤범벅 그 자체였다.
‘어떡하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겨우 침대에서 일어나 꾸역꾸역 옷을 챙겨 입었다. 초췌한 모습 그대로 **를 데리러 학교로 향했다. **를 보면 눈물을 참아야 했다. 천진한 얼굴을 한 작은 천사가 걸어오면서 웃고 있었다. 순간
‘저 아이의 웃음은 해맑은 보물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나도 그런 천사의 에너지를 받아 신우를 맞이했다.
“엄마, 그 약 먹으니까 너무 어지럽고 수업시간에 몽롱해..”
“어.. 정말? 엄마가 선생님께 물어볼게.”
지난주에 멀쩡한 아이가 갑자기 이렇게 되다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또랑또랑한 **의 말과 포동포동한 자태며 **는 아픈 아이가 절대 아니었다. 나 자신이 부정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어지러운 증상이 있어도 계속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남편과 나는 밤새 인터넷을 뒤졌다. 여러 병원 사이트에 들어가 병원 예약 스케줄을 검색했다. 다행히 서울대학병원 가장 빠른 일자가 일주일 뒤여서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아이가 호소하는 증상 때문에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약을 먹지 말라고 했다. 기다리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지옥 그 이상의 시간이었다. 모든 이성은 사라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친 사람처럼 매일 울면서 지내고 있었다. 남편은 매일 퇴근하고 와서 퉁퉁부은 내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괴로웠으리라… 서울 가기 이틀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남편이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당신이 정신 차려야지. “
이런 말을 하는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내가 **를 가졌을 때 스트레스로 하혈도 하고 그러면서 영향이 간 건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었기 때문이다. 신우가 태어나고 처음 모유를 먹이기 위해 신생아실로 갔던 기억이 떠 올랐다. 너를 처음 내 품에 안았을 때, 너무도 미안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지. 너를 잘 지켜주지 못한 거 같아서… , 그래도 건강하게 나에게 와 주어서 감사하다고… , 유독 큰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는 너를,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 품에 끌어안고 모유를 하며 고해의 시간을 보냈었지.
‘하늘아, 미안해… 엄마가 부족해서… 엄마가 잘못했어… 사랑해…’
죄책감에 나는 **를 가슴에 품은 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서울로 가는 날이 밝았다. 아침밥을 먹을 수 없었지만 아이와 남편을 위해 아침밥을 차렸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간간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로에게 형식적인 말만 던질 뿐이었다. 무거운 공기의 존재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지만, 우린 서로 각자의 물건을 챙기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차를 몰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티켓팅을 한 후 좌석표를 확인하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리고 탑승시간까지 우리는 각자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되어 비행기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이륙 방송이 흘러나왔다. 방송이 끝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일상의 모습을 한채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평온해 보였다. 그러한 생각이 스치면서
‘과연 저 사람들 모두 정말 평온할까? 저들도 나름의 짐들을 이고 살아가고 있겠지…’
순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아!... 뭐지? 우리 **는 건강한 눈이 있어 이 아름다운 세상을 아직 바라볼 수 있는데, 귀와 입이 있어서 아름다운 소리들도 들을 수 있고, 나와 대화도 나눌 수 있고, 더구나 두 다리가 너무나 튼튼해서 나와 손을 잡고 함께 산책도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잖아 그 이상 뭐가 필요하지?’
아! 내가 욕심을 냈던 거구나!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 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 반듯한 회사에 취업도 해야 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도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내 마음 기저에 있었구나….
‘내가 또다시 어리석음을 범했구나!’
라는 생각에 미치니 욕심에 사로잡혀있던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아, 고맙습니다. 이 아이와 같이 할 수 있는 눈과 입과 귀와 다리가 있어서…’
신은 이겨낼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했던가? 친정어머니의 4년간의 투병생활 그리고 남편이 신장암 진단 이후 9시간의 수술을 겪으면서 고통과 마주하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신은 또 다른 아픔으로 나에게 또 하나의 소중한 깨달음을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시간은 나에게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주는 시간이었다. 착륙 방송을 들으며 나는 옆좌석에 앉아 있던 소중한 아들과 남편의 모습을 고맙게 바라볼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들과 같이 할 수 있어서…, 이 길이 나의 길이라면 기꺼이 걸어갈게요… 감사히 받아들일게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걸어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사랑해”
라고 말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발생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린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이런 깨달음을 저에게 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다. 조금은 가벼운 걸음으로 나는 아들과 남편을 따라 지하철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다시 한번 서로의 연결된 끈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혜화동에 위치한 서울대학병원 정문을 향해 걸었다. **가 아직 미성년자여서 어린이병원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한참을 살핀 후 해당 부서에 자료를 등록하고 접수절차를 마친 후 신경외과 진료실 앞에 앉았다. 한 숨 돌리는가 했는데 그때부터 내 시야에는 심각한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환자들 틈에서 우리 **는 아주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말을 어눌하게 하거나, 허우적거리며 걷거나 혹은 걷지 못하거나, 의사표현이 전혀 안 되는 중증인 어린 환자들의 모습은 나에게 또 다른 죄책감과 동시에 내 아이가 저 정도가 아니어서 감사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동안의 나의 어리석음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잠시 후, **의 이름이 호명되었고 우리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진료환자와 대기환자 사이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의도치 않게 앞 환자 부모님의 오열이 들려왔다. 잠깐이지만 같은 부모로서 마음이 안쓰러웠다. 앞 환자 어머님은 혼자 약을 타러 오신 거였다. 의사 선생님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으리라… 앞 환자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진료실을 나가자마자 간호사는 **의 이름을 확인하였고 우리는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간 MRI와 CT를 살펴보시며 어떻게 왔는지 물으셨다. 나는 **가 쓰러지던 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진료소견서를 보시더니
“어, 이거 OOO이 아닙니다. 해마 옆 검고 동그란 부분은 물혹이에요.”
그리고 뇌수 종일 수도 있으니 검사 하나를 제안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으면 죽을 때까지 자신이 뇌에 혹이 있는 것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도 있고, 사고나 어떤 사유로 사진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다. 이윽고 선생님께서는 주소를 확인하시고는
“집이 제주도네요”
라며 빨리 검사실로 가서 수면 뇌파검사를 하고 오라고 지시하셨다.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검사실로 향했고 **는 곧바로 뇌파 검사실로 들어갔다. 남편과 나는 서로 쳐다보았다.
‘아,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정말 오진일까?’
우린 OOO이 아니길 바랬다. 한참이 지나서 **가 검사실 안에서 걸어 나왔다. 검사실 직원은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라 부축하라고 하셨다. **는 오진이라는 생각에 내심 기대했는지 괜찮다며 멀쩡히 걸어 나갔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의 배려로 하루 만에 일사 철리로 검사와 판독을 할 수 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손을 맞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님 들어오세요”
우린 묵직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선생님 앞에 숨죽여 앉았다. 뇌파 기록지를 살펴보시고는
“이렇게 쓰러진 적이 처음이니?”
“네”
“공부는 잘하니?”
“……”
“공부 열심히 해라.”
하신다. 선생님께서는 뇌수 종일 수도 있어서 체크해보았더니 아니라고 하셨고, 쓰러진 것이 처음이니 일단 지켜보라 하셨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받은 약은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다만 머리에 충격 주는 일은 삼가고 충분한 수면, 앞으로 알코올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 다음에 쓰러지면 바로 내원하라 하시고는 진료가 끝이 났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바 주보며 무엇에 홀린 듯 말을 했다.
“정말인가요? 선생님? 그럼 오진인 거네요?”
선생님께서는 신우에게 다시 한번
“열심히 공부해라”
라고 말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꽤 여러 번 했다. 의사 선생님은 마치 **의 구세주와도 같았다. 진료실을 나오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오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오진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날 때쯤, 남편은 오진을 내리고 약을 처방한 의사 선생님께 돌팔이 의사라고 무척 화를 내었고, **는 내가 OOO일리 없다고 안도하는 듯했다. 나는 오진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감사했다.
제주로 내려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마음을 내려놓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것을 주시는구나…’
**가 진단을 받고 오진 결과가 나기까지의 일주일은 정말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제주도에 내려온 다음날, 나는 **가 약을 잘못 먹어 평생 아픔을 갖고 살아야 할 뻔한 경우여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 요청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자기가 보아왔던 경험치에서 진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원망이나 화를 내지 않고 환자의 입장에서 부탁의 말을 드렸다. 여러 케이스 경험의 부재에서 온 진단이었으므로 우리의 경우를 경험으로 선생님께서도 앞으로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거나 진단에 자신이 없으시면 큰 병원에서 한번 진료를 권해주시라고… 약을 계속 먹었더라면 정말 끔찍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선생님께서 오진한 덕(?)에 저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 후로 **가 MRI와 CT로 검사하거나 상담을 하기 위해 선생님과는 두어 번 더 뵈었다. 물론 판독은 서울대학병원에서 했다. 예전 같으면 두 번 다시 찾지 않았을 테지만 이 또한 내가 많은 경험을 하며 깨달은 삶의 지혜 덕분에 악연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계속 배워가면서 성장해가고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실패를, 고통을, 아픔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들을 치르는 동안 나는 더욱 단단해지고 너그러워지고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나에게 올 고통들에게 소리친다.
“그래 다 오렴… 내 앞에 다 와라. 얼마든지 당당히 맞아줄게…”
너는 나의 스승이야…
- 2019년 4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