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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수건을 개다가 문득 나를 본다

by Sapiens



처음 태어날 때 너도 나처럼 부드럽고 향긋했다. 매끈한 피부처럼 거칠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너희들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나를 보는 듯하다.


나도 태어나면서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네가 세월의 시간을 먹을수록, 우리는 우연의 일치처럼 닮아있다.


근육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처럼 빳빳해지고 중간중간 골절이 자유롭지 못하듯 구멍도 나 있다. 그렇게 하찮은 존재 같아도 버려지지 않는 것을 보면 쓸모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운이 좋으면 우리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때론 노숙자가 되어 길을 헤매기도 한다.


너희들도 멍들고 덧칠해지고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갈기갈기 찢기거나 걸레로 바닥을 닦는 용도로 변하기도 한다.


걸레의 역할도 못하게 되는 날이 오면 죽음을 앞둔 우리처럼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별을 준비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너희들의 운명은 쓰레기 버리듯 버려진다.


햇살이 따스한 어느 봄날, 어머니는 하얗게 빤 너희들을 햇살 아래서 말리셨다. 그리고 마른 너희들을 걷어내어 정성껏 각지게 개어 놓아두었다. 그 시절 너희들에게서 나는 향은 지금은 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요즘은 눈이 오고 비가 와도 빨래는 돌아간다. 건조기에 넣어 빙빙 돌아가며 정신없이 얽히고설키며 고온에 데워진다. 감자 찌듯이 푹 쪄지면 건져내어 개어 놓는다.


건조기에서 갓 꺼내진 너희들 앞에 앉아 너희들을 바라본다. 그 시절 향긋한 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바람에 흩날리다 잠깐 와서 앉았다 가던 꽃향기도, 햇살의 따스함도 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찌든 냄새만이 반복되는 빨래의 순환 속에서 누적되어 축적될 뿐이다. 그 쾌쾌한 냄새 앞에서 오늘도 난 기계처럼 너희들을 개고 있다.


그 시절 어느 봄날 보았던 어머니가 개어 놓은 너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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