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다를 모습을 취하고 있을 뿐...
<am.6:00>
네 이웃의 식탁
매일 우리는 식탁을 마주해 앉는다. 혼자일 때도 있지만 누군가와 동행하기도 한다. 식탁 위에는 항상 화려한 음식만 올라오지 않는다. 삶이 희, 노, 애, 락, 애, 오, 욕의 칠정의 맛을 품고 있는 것처럼, 미각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다섯 가지 감각이 살아 움직인다.
어느 하나 필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하지만 가감이 있어 지나칠 때가 있던지, 부족할 때가 있다. 때론 누군가의 험담으로 매우 씁쓸한 맛이 풍기기도 한다. 때론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는 눈물을 훔치게 할 정도로 짜기도 하면서도 달콤하다.
다양한 맛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이웃들의 감언이설은 달다. 식탁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메아리는 순식간에 퍼져나가기도 한다. 함께 하고 있되 우리는 눈치를 보고 앉아 있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상상을 하기도 한다. 얼굴에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속마음은 붉히고 있을 때도 있다.
가면은 참 유용하게 쓰인다. 세상에 모든 것을 감출 수는 없다. 하지만 때론 가면을 사용할 필요도 있다. 적절한 때와 장소에 맞는 가면은 내 생활을 침해하지 못하게 보호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맛이 존재하는 식탁에서 맛에 취해 모든 것들을 맛보려 욕심을 부려선 탈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소식을 하고, 타인과의 대화를 음미하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양한 식탁에서 화려함만을 쫓지 말아야 한다. 눈앞에 펼쳐 보이는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정갈함이라든지,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존재하는 것들과의 교감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식탁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작은 테이블은 하나의 삶의 터전이 되어준다. 그 안에서 살아 존재감을 갖기 위해 우리는 치열한 대화를 한다. 다양한 맛들로 입안을, 눈을, 현혹시키려 든다. 그러한 시간 속에 존재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결의 무늬를 그리고 있는 또 다른 자아와 마주하기도 한다.
누구와 어떤 공간 속에 자신을 둘 것인가? 그것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취사선택을 잘해야 한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우리 자신의 색감으로 재 탄생해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야기와 타협이 난무한 이웃들의 식탁은 소음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공장과도 같다. 타협은 의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타협이 아니라 협업을 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필요로 하는, 추구하는 맛들이 있듯이 자신이 가진 맛들을 꺼내놓으며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이웃들과의 식탁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같은 식탁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