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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나비 Oct 05. 2021

일 년 내내 꽃을 보여 달라니

초록 식물 잔혹사


시인 렝보는 말했다. ”나무는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꽃을 피운다. “고 우습게도 나는 우리 집 초록이들 에게 일 년 내내 꽃을 보여달라고 소원했다.  

    

천지만물은 태어나서 스러지고 꽃들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때가 되면 다 제자리로 돌아간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다.  순리가 이럴진대 어쩌자고 사계절 내내 꽃을 봐야겠다는 어리석고 부질없는 욕심을 부렸던 걸까?  

   

유년시절, 고향 어른들은 밭이나 산자락에 돈이 되는 유실수(밤, 감, 대추, 복숭아.....)를 심었다. 울 아버지는 철 따라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어 봄에는 채송화와 튤립을 여름에는 접시꽃과 금계국, 가을에는 국화꽃과 해바라기 겨울에는 동백꽃을 가족들에게 보여 주셨다. 


”돈도 안 되는 꽃을 뭐한다고 저리 심는담 “ 엄마의 끊임없는 핀잔과 지청구에도 아버지의 지독한 식물 사랑은 결코 멈춤이 없었다. 


이런 아버지의 유전자 덕분인지 쉰 살이 넘은 나이지만 감성이 말랑말랑한 자칭 꽃중년(?)이 되어있다.     

최근 브런치 작가에 입문하고 식물에 대해 검색하니 저처럼 화려한 꽃들의 매력에 홀려 똥 손인 줄 알면서도 


이쁜 꽃과 초록이 들을 집안에 들였다가 죽고 또 죽이는 식물충(?) 신 인류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동병상련의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은 적이 있다.      


나 역시 대충 헤아려 보니 5년 가까이 꽃과 초록이들에게 빠져 날린 돈만 어림잡아도 기 백만 원은 훌쩍 넘어서지 싶다.          


2년 전 봄, 당근 마켓에 올라온 제라늄의 일종인 ‘천사의 눈물’을 사기 위해 옆 동네 김제시까지 원정을 가고, 군산시 대야면 오일장에 가서는 쌍 꽃 잎이 이쁜 신품종 투톤 칼라 연분홍 카랑코에를 사서 아파트 베란다에 들였다. 문득 이 이쁜 꽃들을 1년 내내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부질없는 욕심이 동해 화초에 대한 검색을 실시하고 남향 아파트에서 잘 자란다는 계절별로 꽃을 볼 수 있는 화초 10여 종을 제법 큰돈을 들여 구입했다. 창문 가까이에는 볕을 좋아하는 제라늄과 꽃기린, 베고니아를 놓고 국화꽃과 덴마크 무궁화도 들였다. 약간 그늘진 곳에는 아레카 야자, 스파티 필름과 파키라를 놓고 주방에는 스킨답서스를 놓고 화장실 가까이에는 관음죽을 놓았다. 


 오래 꽃을 보여주는  안스리움 (꽃말은  번뇌)


빨리 실한 꽃이 보고 싶어 물을 듬뿍듬뿍 주고 때때로 영양제도 꽃아 주면서 밤에는 LED 조명까지 비춰주며 잠을 못 자게 괴롭혔다.

자연의 위치를 벗어난 과한 욕심이 독이 된 걸까? 


나의 바람과 다르게 꽃과 초록이 들은 시들시들 죽어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열정만 가득했던 그때, 꽃들을 물에 빠트려 죽이고 햇볕에 태워 죽이고 벌레에 물려 죽이고 죽고 또 죽이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흔적 없이 초록이 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잔혹한 식물 일급 살인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봄, 불굴의 의지로 화초 키우기에 다시 도전 이번만은 실패하고 싶지 않아 햇볕, 물, 바람을 각별하게 신경 쓰며 영양제도 드문 드문 꽃아 주고 관엽식물 줄기 속에 숨은 깍지충도 잡아주면서 애지중지 정성을 쏟았다.


 잘 모르는 것은 오거리 꽃집 여자 사장님께 자문을 구하면서 초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물과 흙의 성분 배합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이런 나의 정성이 갸륵해서였을까? 

         

제라늄과 베고니아는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붉은 꽃을 몇 달씩 보여주고 꽃기린은 거의 매일 분홍꽃을 피어 올리며 나를 함박웃음 짓게 했다.   

  

꾸준하게 식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쌓으면서 자신감이 넘쳤고 꽃집이나 아파트 앞 트럭에서 마음에 드는 식물이 보이면 그때그때 욕심껏 들이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 베란다는 크고 작은 꽃들과 초록이 들로 가득했다.     

출동기간이 길어질 때는 물을 제때 주지 못해 조금 메말라 있거나 강한 햇빛에 노출되어 시들 때도 있었지만 잘 버텨 주었다. 


일과 후에 집에 돌아와 생기 가득한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엔도르핀이 팍팍 돌며 힘이 생겼다. 초록이 들이 내뿜는 음이온과 은은한 꽃향기에 취해 순간순간 행복했고 나는 매일 건강해졌다. 


    

짧은 행복도 잠시 그해 겨울,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난로를 피우거나 창문에 뽁뽁이를 붙여 보온을 해주었거나 화분을 거실로 옮겨 월동을 준비해야 했는데 내일 하지 다음에 해주자 하며 차일피일 실천을 미뤘다. 미련한 게으름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추운 날씨에 냉해를 입었는지 작고 앙증맞은 별 모양 연분홍 꽃을 자랑하던 카랑코에는 꽃대가 시커멓게 멍들어 폭삭 주저앉아 있고 햇볕을 따라 붉은빛의 고운 자태를 보여주던 제라늄은 시들어 꽃송이가 뭉텅 빠져 흔적도 없고, 베고니아는 곱던 꽃잎이 누렇게 변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한 미국 NASA 선정 공기정화 식물 부문 당당 1위를 차지한 아레카 야자까지 죽으면서 나의 꽃과 초록이들은 거의 죽었다. 오호통재라! 싱그러움이 가득했던 나의 베란다 식물원은 그렇게 망했다. 회복불능의 상태로.


일 년 농사에 실패한 농부처럼 화초의 남은 뿌리를 뽑고 흙을 버리고 화분을 정리하고 베란다 물청소를 하면서 ‘괜찮아 또 키우면 되지’ 스스로 위로를 해봐도 죽인 화초들이 너무 아깝고 미안하고 속상하고 잘 돌봐 주지 못한 죄책감에 가슴이 칼로 베인 것처럼 아팠다. 월동만 제때 했더라도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을 베짱이 같은 게으름을 탓했지만 후회는 언제 해도 항상 늦다.  


    

지금 나의 베란다에는 항아리와 빈 화분들이 가득하다

아쉬운 데로 거실에 거의 일 년 내내 꽃을 보여주는 안쓰러움과 한 달에 한번 정도 물을 주는 게을러도 비교적 키우기 쉬운 소량의 공기정화 식물인 파키라, 마지난타, 스투키 등 몇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딸 서현이의 진심 어린 충고로 꽃을 향한 변함없는 짝사랑을 잠시 접고 욕심 없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배치해놓고 돌보고 있는 중이다. 


짧은 지식으로 의욕만 앞서 초록이 들을 마구마구 죽이던 그때, 많은 종류의 화초만큼이나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에 몸도 바쁘고 스트레스도 많았는데 욕심을 좀 버리고 내려놓으니 비로소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면 여전히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과 꽃집에 진열된 화려한 꽃들의 유혹에 넘어가 살까 말까, 들일까 말까를 갈등 하지만 이제는 쉬이 집으로 입양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죽인 식물 잔혹사를 부정하고 싶고 더 이상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전 북부시장 오일 장날, 불면증에 국화향이 그만이라는 소리를 듣고 작은 화분 딱 한 개만 들이자며 마음먹고 시장에 갔다가 노란 국화꽃은 팽개쳐 놓고 몬스테라, 스킨답서스, 미니 체리, 칼랑코에 같은 초록이 친구들을 거금 사만 원을 주고 냉큼 사고 말았다. 머리는 NO라고 하는데 뜨거운 가슴은 YES를 외치면서.


이번 겨울 ‘초록이 킬러’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면 어떡하나? 천만 관객 영화감독님 들의 현명한 선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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