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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오랑 Jun 22. 2023

#시가 있는 여름(114)-숲, 힐링을 그리다

 숲, 힐링을 그리다

                             재환

여명을 맞을 때는 겸손해야 하지만

숲을 찾을 때는 비장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평생 산판을 누비신 할아버지가 숲을 대할 때 모습은 

당신의 나이가 다 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숲은 인간세상보다 더 격한 드라마를 품고 있고 

승리자의 근엄한 모습만 남아 있다

숲의 흥망성쇠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심판해야 할 태양이 주도한다 

자연에서 가장 강자인 태양이니

숲이라고 해서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숲에는 천이라는 이름표를 단 세월이 산다 

나름의 규칙을 가진 기다림이다

고만고만한 녀석들 사이에서 질서를 잡아야 하고 

심지어 싹을 틔울지 말지도 결정해야 한다

수만 그루의 나무를, 그보다 많은 동물과 곤충을, 미생물을 품고 있다     

도도한 숲은 인간을 차별하는 못된 구석도 있다

어깨가 축 처진 나를 대할 때는 팔을 뻗어 토닥이며 거만을 떨지만

숲해설가인 아내를 대할 때는 존경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자신들의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소개할지는 해설가에게 달린 탓이다     

숲이 가장 반기는 이도 찾았다

오후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는 열다섯의 소녀다

그 소녀에게는 철 따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두를 선보인다

줄기와 가지는 물론 화려한 잎과, 아끼는 열매까지도...

숲은 자신을 찾은 목적이 그림 그리기보다는 치유에 있기를 알기에

두말 않고 도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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