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아님 열한번째
보려고 본 건 아닌데, 어쩌다 봐서 뇌리에 남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하나둘 모이면, 어떤 새로운 생각이 들게 된다.
우연히 본 것이기에 어떤 채널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알쓸신잡을 계기로 알게 된 건축가이자 교수인 유현준님이 강연을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요즘 20대들 사이에서 익선동이 뜨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천장이 꽉 막힌 백화점들이 들어선 이후, 처음에는 사람들이 쇼핑을 주로 즐겼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하늘'을 보고자 천장이 없으면서도 '복도'처럼 양 옆으로 구경할 것이 많은 골목길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골목길은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경험하게 되어 마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는 것. 그것이 다시금 익선동과 같은 골목 상점들이 즐비한 공간이 이를테면 '힙한' 곳으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상점들이 사라지고 이제는 식당들만이 대다수인데, 배달이용률이 높아지면서 이 조차도 길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를 해줬다. 배달이 주가 되면 사람들 눈에 띌 필요가 없으니 굳이 비싼 세를 내며 1층에 식당을 차릴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골목상점을 필두로 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또 떠오르는 '어떤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계속 쌓이기만 해서 해지했지만) 올해 초 한겨레 일간지를 새로 구독했을 당시 한 도시계획기술사가 이제는 '도시 단위'로 경제를 되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한 글이다. 전염병 유행으로 사람들이 탈도시화를 얘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위해선 고밀도시를 추구해야한다는 것이다. 비(非)목적 지향적 대화(쉽게 말해 잡담), 비의도적 조우가 사라진 세상은 '인간'적이지도 않고 건강하지도 않은 세상이라는 것이 첫째 이유다. 삶의 중요한 가치인 소통이 사라진다면 이는 인간으로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이 아니다. 둘째는 여러 소통 공간 및 편의시설들이 자동차가 아닌 자전거나 도보를 통해 닿을 수 있도록 모여있다면 오히려 환경오염이 줄고, 대단위 이동 또한 불필요해져 전염병에 강한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 번쯤 본문 전체를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숨을 곳은 없다, 리셋하자, 팬데믹에 강한 도시로", 최이규, 2021-01-07)
두 이야기가 머릿 속에서 합쳐지니 소상공인에 주목할 필요가 더욱 있어보인다. '도시 단위' 마다 '다양한 공간'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곧 건강(사회적 건강과 의학적 건강)한 사회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공간이라함은 '여러가지 재화/서비스가 오고가는 상점들'과 '공원과 같은 열린 공간들'이 합쳐지면서 이루어지는 걸 의미한다. 여기에 덧대어 요즘 읽고 있는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는 이런 필자의 확신어린 생각에 한술 더 뜬다.
"노동자는 자신의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소경영의 기초이며, 소경영은 사회적 생산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이다."(「자본론」1권7편24장)
책의 저자는 위와 같은 자본론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지역화폐를 통해 ㅡ착취를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이윤이 제외된ㅡ 지역 단위의 순환적인 경제 구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생산 수단이 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는, 그러므로 하여금 자본가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떼어 이윤을 남겨주는 구조인 자본주의의 이면을 비판하며 소상인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정리하자면, 도시-지역 단위에 다양한 공간들이 만들어져야 소통이 활발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골목길을 이루는 작은 가게들과 같이 여러 업종의 소상공업이 바로 그 다양한 도시 문화의 모습을 이끌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꾸준히 '재난지원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때마다 영업제한을 받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보상금에 대한 의견 충돌 또한 끊이질 않는다. 애초에 다른 나라들에 비해 피해 구제 지원금이 인색했던 것과 더불어(노컷뉴스, "코로나19에 정부가 빚 안 늘리려니 민간 부채 급증?", 2021-06-09),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도 썩 동의하지 않는 여론이 크다. 재난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팬데믹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단계별로 거리두기 지침이 내려지고 있지만 정작 피해를 독박 쓰는 것은 소상공인들이다. 일각에서는 '이익공유제(이득을 많이 본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인센티브를 통해 이익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외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마냥 나라빚을 아끼려 실현하기 어려운 제도를 꺼내 홍보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안쓰럽다. 앞서 언급했듯 다양한 공간이 부재한 도시는 인간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이끌어낼 수 없을 텐데, 그 중심에 서있는 여러 업종의 소상공업이 죽어가는 걸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팬데믹 상황이 끝난 후, 아마 우리는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을 것이다. 감히 예상컨데 마스크를 벗는 것이 굉장히 어색할 것이고, 또 이 상황이 길어져 회복이 더뎌질 수록 유아 청소년기 세대의 정상적인 '대면' 생활이 되찾아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다양한 모습을 가진 도시를 그제서야 되찾으려면 너무 늦다. 살아 숨쉬는 골목길 같은 정경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의 중요성에 대한 전국민적 공감과 국가의 적극적 지원만이 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게 하듯, 천천히 도시를 다시 다채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알바를 하다보면 종종 옆집 사장님이 우리 가게로 놀러온다. 대부분이 거리두기로 인한 장사 한탄이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소소하게 재밌다. 필자는 앞으로도 이런 '작은 가게들' 속 작은 두런두런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찌됐던 우리의 삶은 이야기들로 연결된 것이 아니던가. 더 다양하고도 삭막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넘쳐 흐르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뉴스아님 #2021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