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감미 Aug 25. 2021

대학의 의미

뉴스아님 열두번째

학보사를 시작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불만이 많았다. 불만이 있으면 어떤 필터링도 거치지 않아 초중등땐 정말 쌈닭마냥 많이 싸웠고, 고등학교땐 별명이 투덜이었다가 무수한 최면 끝에 결국 이긍정이라는 별명을 획득해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지. 뜯어 고치고 싶은게 여전히 많다.



그러나 교내 신문사에 들어간 후, 내 모든 문제의식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미친 짜증나'에서 '개짜증나는데 남들은 안그런가'가 되고, '뭐가 문제지' ㅡ '정확히 어느 지점이 문제지' ㅡ '애초에 문제긴 한 걸까' ㅡ '뭘 해야 바뀌지' 순으로 단순 불만이 꽤나 계몽됐다. 그래서 작은 여론이라도 얻지 못하면 내 불만은 그저 한낱 투덜이의 욕설로 축소되고 만다. (결코 소멸되진 않음)



요즘은 기사가 될 만한 문제들을 찾느라 뇌용량 과다인데 애초 내가 뭘 말하고자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한번쯤 그냥 나에게 있어 대학이라는 공간이 뭔지에 대해 진득하니 생각해봤다.



대학은 19살때까지만 해도 어떤 공간이라기 보다는 나의 목표의식을 자극시키며 열망이라는 당장의 동력에 기름을 부어주는 어떤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냥 대학 이름만 스케줄러나 면학실에 써붙이면 자동으로 공부가 되는 몸땡이였기에 형체없는 것들 중 가장 가성비 좋은 연료였던 것이다. 그러나 입학 이후엔 피부로 그 공간감이 와닿고, 선후배 동기들과의 대화로 보이지 않는 소속감을 얻었다.



그리고 1년을 떠나 있은 후, 학보사 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채 다시 돌아오니, "대학"은 건물-수업-시스템 그 자체. 형체가 아주 뚜렸하고, 학생들을 품고 있는 "둥지"로 보인다. 그래서 더더욱 그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 부조리, 부당함, 부실함 등등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면은 한정돼있고, 시의성과 화제성 둘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니, 흔히 말해 '탑급'의 문제만을 찾게 되고, 진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뭔지, 대학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잊었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커가며 계속해서 생각이야 하겠지만, 비단 대학뿐만이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소속된 사람들이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창구는 중요하고, 그 목소리를 듣고자 한번 마음먹었다면 최대한 두 눈을 뜨고, 두 귀를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솔직한 말로는 수습 초반엔 뭐가 변하려나 싶었고, 어디가서 인터뷰 딸 때 대학 기자라고 하면 비웃지는 않으려나 싶었다. 하지만 다른걸 차치하고 이젠 진짜 뭔가 변할거 같아서 무섭고 또 기대된다. 그래서 더더욱 소재거리를 찾는데 신중하게 되고, 모순적이게도 위와 같이, '탑급만을 찾는 행태'에 또 다시 빠져든다.



나쁜거라는 생각은 안든다. 탑급이 속된 말같지만 실제로 커다란 여론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기에 가치있다. 그러나 본질을 잊는 순간 결국엔 큰 목소리만 듣게 되는, 목소리 큰 자만을 대변해주는 인간 한 명이 될것이기에 익숙함과 쉬움을 경계해야한다. 자꾸 잊으려하는, 신체 나이 성별 외모 출신 소득 등에 관계 없이 교육은 열려있어야 한다는 신념, 어쩌만 당연한 얘기를 되뇌이길 다짐한다.



대학은 그래서, 어떤 공간이 되어야하는지. 이 과정 속에서 계속.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뉴스아님 #20210802

이전 11화 소상공인과 작은 도시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