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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Jun 30. 2024

처가살이 경험기 (9)

요양보호사의 도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딘가에 얽매이거나 구속받는 생활을 싫어했다. 이런 생활을 싫어한 이유는 나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적 집안 문화와 상명하복식의 군대 문화, 대기업의 수직적 문화를 경험하며 청년기를 보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처가살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 서로 간에 자유롭고 관여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좋았다. 장모님은 방송대를 다니면서 학우들과 영어나 철학을 공부하고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래서 장모님은 종종 밤늦게 귀가할 때도 있었다.


내가 결혼 생활 13개월 만에 잘 다니던 중견기업에 사표 내고 집에서 쉴 때 앞으로 내 미래에 대해 무척이나 걱정하던 부모님과 달리 장모님의 반응은 쿨했다.


"이서방. 직장을 그만 두면 이제부터 나랑 같이 열심히 공부하면 되네"


사실 처가살이 중에 내가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장모님이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떨지 조심스러웠다.


"이서방. 왜 이렇게 집에서 놀고만 있나? 우리 딸 먹여 살려야 하지 않겠나?"


장모님이 나에게 이런 태도를 보였으면 어쩌면 장서갈등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모님은 돈은 우리 딸이 벌어도 되니 이참에 취미 생활이나 공부를 해보라고 말했다.




건강관리의 문제였을까 세월의 문제였을까. 요즘 처가살이는 결혼 초와 많이 달라졌다. 활동적이었던 장모님이 시력과 다리 무릎의 장애로 인해 활동이 어려워진 것이다. 요양보호사가 처갓집에 오전과 오후로 방문하면서 장모님을 돌봐 드리고 있다. 장모님이 산책하는데 처남이나 아내가 동행하고 있다.


시력이 매우 좋지 않은 장모님은 집에 아무도 없으면 두려운지 지인들을 자꾸 초대한다. 그래서 때로는 가족 간에 사생활 보호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요양보호사의 방문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들은 집안 청소를 해주고 음식을 해주며 장모님의 말동무가 되어 준다. 신혼 때는 아내가 장모님과 함 살고 싶어 한 것이 처가살이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부부가 건강이 좋지 않은 장모님을 돌봐 드려야 하는 것이 처가살이의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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