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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Jan 10. 2024

뉴스타트 힐링센터 (9)

단편소설

힐링센터는 병원과 다르게 TV가 없었다. 숙소에서의 TV 시청은 숙면을 방해할 수 있고 전자파가 발생하므로 입소자들의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힐링센터의 방침 때문이었다. 입소자들 대부분은 난치병 환자들이었으므로 한 달 이상 힐링센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한 달 이상이나 머무르면서 TV 없이 지낸다는 것이 꽤 심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쯤 친척 병문안을 갈 때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자유 시간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TV 시청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층 안내데스크에 있는 남자 청년에게 물어봤다. 점심 식사 후 입소자들이 어떻게 지내냐고 말이다. 그는 입소자들이 숙소에서 쉬는 사람들도 있고 힐링센터 주변을 산책하거나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아내에게 오후 시간에는 함께 힐링센터 주변을 산책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내 말에 동의했다. 그녀와 함께 12호실에서 나와 힐링센터 출입문에 다다랐다. 추운 겨울인지라 앞마당에는 두꺼운 패딩 옷을 입은 입소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입소자 일부는 앞마당 가장자리에 원을 그리듯이 무언가 생각하면서 천천히 걷고 있었고, 다른 입소자들은 앞마당 오른쪽에 있는 그네 근처에 삼삼오오 모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우리에게 그네 근처로 걸어오라고 손짓했다.


우리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앞마당 그네 앞에는 신중년으로 보이는 여자 입소자 3명과 남자 입소자 1명이 서 있었다. 그들 중 남자는 추운 듯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여자 중 1명은 방한용 부츠로 멋을 조금 내긴 했지만, 나머지 2명은 겨울 추위에 대비해 중무장한 듯 복장에는 별로 신경 안 쓴 것처럼 보였다.


“힐링센터에 오늘 오셨나요?”


남자는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내는 그에게 어제 늦은 밤에 도착했기 때문에 우리를 오늘 처음 보셨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여기 모인 사람들이 뒷산으로 등산할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그는 입소자들은 대부분 몸 상태가 좋지 못하여 쉬엄쉬엄 갈 것이니 부담 갖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와 함께 산책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잠시 생각하더니 같이 등산하겠다고 말했다. 걷기에 불편함이 있으나 친구도 사귀고 건강 정보도 얻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4차 항암을 마치고 나서 부작용이 생겼는데, 걷기 위해 발바닥을 땅 위에 내디딜 때마다 오른쪽 발바닥에 통증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심 그녀가 걱정되었으나 그녀가 알아서 판단을 잘할 거라 믿고 그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힐링센터 출입구를 걸어 나오자, 오른쪽으로 경사진 좁은 길이 보였다. 길은 오솔길이었다. 겨울이라 가을과는 달리 주변의 풍경이 멋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위로 젖혀 높이 뻗은 나무들을 바라보더라도 녹다 만 눈과 앙상한 가지들만 보일 뿐 생동감 넘치는 등산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10분 정도 포장도로를 걷다 보니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딱딱한 아스팔트 길을 지나 흙이나 자갈로 바닥을 다져 놓은 듯한 길이 보였다. 남자는 그녀에게 여기서부터 길이 더 좁아지니 등산용 스틱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말기 암환자로 힐링센터에 온 지는 1년이 되어 가고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정대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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