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눈이 서재를 둥둥 떠서 서서히 어슬렁거렸다. 서재를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유형하는 것처럼 커다란 눈은 어느 책 한 권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커다란 눈은 초롱초롱해지면서 반짝였다. 자신이 택한 책을 응시하니 서가에서 달그락달그락하다 천천히 빨려 나왔다.
커다란 눈은 갑자기 입으로 바뀌어 빨려 나온 책을 놓치지 않고 입안으로 넣고는 아그작아그작 씹어먹었다. 그렇게 또 한 권을 또 한 권을 맛나게 먹어버렸다. 그러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압도적인 크기에 눌린 수한은 자신을 쳐다보며 서서히 다가오자 입을 두 손으로 막고 숨을 죽였다. 그렇게 하니 멈춰 섰다. 서서히 다시 서가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가 했는데, 코가 간질간질했다. 재채기가 나오는 것을 멈추려고 TV 의학 프로그램에서 봤던 방법으로 코를 만지작거려 재채기를 간신히 멈췄다. 순간 당황을 했지만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코에서 손을 떼자마자 갑작스럽게 재채기를 했다.
“에이 푹”
재채기가 나오는 코와 입을 두 손으로 강제로 막아 조금이나마 소리를 적게 내려고 했는데 틀려버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서가 방향으로 돌아가던 눈은 자신이 있는 쪽으로 재빨리 돌리며 흰자위가 핏물이 들더니 순식간에 돌진하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뭔가 일어날 것 같았는데, 아니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한참 동안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눈을 뜰 엄두가 나지 않아 귀에 신경을 총동원해 가며 커다란 눈을 찾았다. 가만히 이대로 있을지 아니면 뭔가 할지 고민을 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실눈을 뜨고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서재가 아닌 아버지의 연구실로 바뀌어 있었다. 화이트보드에 빽빽하게 적힌 수식과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자료의 조각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암막 커튼 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줄기는 핀 조명처럼 어린아이를 비추고 있었다. 바닥과 책상에 펼쳐진 자료들을 바라보며 재미난 퍼즐처럼 뭔가 그림이 그렸다. 생각나는 대로 빈 종이 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 자 한 자 적어내려 갔다.
‘아그작아그작’
갑자기 등장한 아까 그 어마어마한 눈이 어린아이를 노려봤다.
“안 돼!”
뭔 용기가 나서 소리를 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를 향하던 눈은 또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무 놀라 도망치려 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을 향하면서 순식간에 다가온 눈은 커다란 입으로 바뀌더니 자신을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