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온 환경에 관한 이야기
Y는 어느 날 강아지를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사귄 지 3달 정도 되었을 때인데 갑자기 놀러 오라고 해서 괜히 긴장되었다. 한 여름이었는데 그의 집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러 가기로 약속했다.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만 하다가 갔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놀러 간 날, 어색하긴 하지만 Y의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나는 태생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부모님을 만나게 해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고민했다. 내 나이가 젊기는 한데 Y는 일본에서 결혼 적령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Y는 그냥 나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자신의 강아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부른 것이었다. Y는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며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Y네 집은 작은 2층 주택이었다. 같이 강아지와 놀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는 Y와 Y의 어머니와 함께 디저트를 먹었다. 그리고 Y의 방을 구경하고 집으로 갔다. 또 한 번 더 가게 된 적이 있었는데 Y의 아버지는 접골원을 하신다. 마침 내가 손목이 자주 아팠고 Y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한 번 진료를 받아보라고 해서 가게 되었다. 그 이후로 두 번 더 접골원에 가기는 했다.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Y와 나는 태어난 나라는 다르지만 나고 자란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점도 있으나 비슷하게 부모님에게 사랑받으며 대학까지 졸업하고 같은 회사에 입사했다는 점에서 (같은 회사인 게 크지만) 우리는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어차피 한국인인 내 유년시절은 써봤자 재미는 없지만 Y의 유년시절과 비교하기 위해 간단하게 설명해보면
부모님은 맞벌이로 외할머니의 손에 자라긴 했지만 저녁에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지냈다. 고등학교 시절, 어렴풋이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여 일본어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4년간 공부하여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몰라 지원해본 교직이수과정은 다행히 경쟁률이 낮아 교직이수까지 하게 되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교사 자격증은 있으니 배는 굶지 않겠다는 자신감에 젊은 날을 외국에서 보내고 싶어 해외 취업을 했다. 국내 취업이 어려웠던 것도 크다. 이전에 워킹홀리데이 경험이 있어서 취업과 정착은 어렵지 않았다. 회사 동기들이 많이 도와주고 위로도 됐다. 그렇게 일하면서 Y를 만났다. 현재도 일본 기업에서 법인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Y는 어머니가 전업주부이시고 아버지는 접골원을 하신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는 미국에서 유학을 받았다고 하신다. 내가 이전에 손목이 아프다고 하니 나를 아버지께 데려가서 두 번 치료를 받게 해 주었다. Y도 남동생이 있다. Y네 집안은 간호사가 많다고 한다. Y의 남동생 분도 간호사이시다. Y 본인도 접골원 일을 물려받을까 고민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셨다고 한다. 이유는 Y가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이라 환자의 우울함이 물들면 힘들기 때문에 라고 했다.
어머니는 결혼 전에 옷 가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Y는 나가노현에서 태어났지만 그 이후에는 쭉 도쿄에서 살았다. Y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강아지 이야기를 자주 한다. Y에게는 좀 특이한 이력이 있는데 유년 시절에 아역을 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어린 시절 찍었던 광고도 보여주었다. 왜 직업으로 삼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사 외우기가 힘들고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Y의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다. 자신은 아무래도 이공계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Y는 기술전문학교에 다녔고 여학생이 아주 적어서 남학교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애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회사도 적당히 취업설명회를 듣고 입사하였다고. 일본에서는 정말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렇게 회사에 다니다가 나를 만났다.
그의 가정환경은 나와 비슷하긴 했지만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조금 달랐다. 한국은 가족애가 강해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기도 어렵고 간섭이 심하지만 그만큼 보호를 받기도 하는데 이 부분만큼은 일본과 달랐다. Y는 고등학교 때부터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진로를 정할 때는 부모님이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Y에게 그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면 된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자란 Y는 내가 타지에서도 가족에게 간섭받고 가족에게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한다. 나에게 너의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 원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Y의 말이 맞기는 하다. 그런데 어쩌냐, 나는 한국인이고 가족의 끈은 엄청나게 질기며 내 가족의 의견도 아주 중요한 것을.
가끔씩 Y의 부모님도 Y를 걱정하긴 하나 Y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Y는 부모님은 타인이라고 한다. 더욱 본인이 결혼하면 부모님과는 정말로 남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의견을 듣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자신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독립적인 존재이고 이제는 회사도 다니는 사회인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나도 Y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으나.. 정말 쉽지 않다. 사실 아직도 고민거리이긴 하다. 내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부모님이 나한테서 독립을 못한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솔직히 부모님이 내 걱정을 하느라 인생을 못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죄책감도 많이 느낀다. 가족을 떠올리면 항상 사랑과 슬픔의 감정이 공존한다. 나도 자식이 생기면 그렇게 되는 걸까?
부모님이 나를 걱정하는 만큼 나도 부모님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최대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택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