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만난 스티브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석인 프랑스 길은 프랑스 생장(St-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한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지나, 대서양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780km의 길이다.
생장에 도착하면, 큰 배낭을 멘 다국적 순례자들이 순례자 사무소로 줄지어 이동한다.
그냥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가다 보면 사무소가 나오고,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친절하게 1일 차 ‘나폴레옹 길’을 설명해 주었다.
자원봉사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1년에 6만 명 정도가 온다니,
이 마을의 큰 관광 수입이겠구나 하는 자본주의적 생각이 스쳤다.
성스러운 순례길과는 대치되는 생각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넘었다는 말로만 듣던 피레네 산맥을 약 1,300m 넘는 코스,
순례자들에겐 이 길이 가장 힘든 구간이라고 했다.
생장에서 보낸 그 첫날밤은 잊히지 않는다.
예약한 알베르게(유스호스텔 정도로 보면 된다)는 2층 목조 집이었는데,
4명이 같이 방을 쓰는 구조였다.
목조 바닥의 삐걱이는 소리, 남들의 뒤척이는 소리,
내일 1일 차에 대한 걱정,
‘갑자기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뒤엉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새벽 5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고 나서,
알베르게 여주인 – 비쩍 마르고 두건을 쓴 히피 같은 중년의 여인 – 은
함께 출발하는 대여섯 명의 순례자들을 둥그렇게 세워 놓고 손을 잡게 했다.
그리고 짧은 주문 같은 멘트를 해주었다.
“순례길을 잘 완주하라.”
의식 같은 순간이었다.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내게 갑자기 말을 걸며
“반드시 스틱을 사용해서 산을 넘으라”라고 충고했다.
직접 스틱 사용법을 보여주며 알려주었다.
바짝 긴장해 있던 내겐,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기 그지없었던 분이었다.
산은 평평한 도로 끝에 가파른 구간이 이어졌다.
숨이 턱에 차오르지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안개가 걷히고,
알프스 끝자락의 피레네 산맥이 굽이굽이 드러났다.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고 이 길을 올랐다니,
그 시절 태어났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현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네.’
그런 생각도 하며, 숨이 차오르면 또 ‘내가 왜 여기에 왔지’ 하는 현타가 왔다.
처음엔 다른 순례자들과 우르르 출발했다가,
어느새 일렬종대로 걷게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앞사람의 보폭을 쫓다 보니 숨이 찼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쫓아가야 할까? 이렇게 아름다운 전경을 즐기며 고개를 들어야지.
앞사람의 발을 보며 갈 일인가?’
‘앞사람과 거리가 나면 어떤가, 좀 늦게 도착하면 어떤가.
여태껏 쫓기듯 바삐 살았는데,
지금 이 산길을 급하게 갈 일이 무엇인가.’
‘오롯이 나의 보폭으로 가자.’
속도를 늦추고 쉬엄쉬엄 걷기 시작하자,
비로소 안개가 걷히며 굽이진 산들이 보였다.
비스듬한 산등성이엔 양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산중턱의 작은 테라스 산장에서는 커피 향이 퍼졌다.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찍고, 마주치는 순례자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Hi? Nice to meet you. Where are you from?”
그렇게 걷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철문을 지나 내려오는 길에서
나는 미국 청년 스티브를 만났다.
그는 NGO 일을 하다 퇴사한 뒤 태국으로 이주했고,
지금은 에콰도르 중학교의 체육 선생님이라고 했다.
“이 길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어요.”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자신에게 ‘숨을 쉬게 해 주었다’고 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게 해 준 길이었다.”
그 말에는 단단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퇴사 후, 동경하던 태국으로 이주해 국제학교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학교 방학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산티아고를 찾는다고 했다.
이제는 미국 여행객들을 모아 순례길을 안내하는 투어 가이드 역할도 한다고 했다.
“왜 산티아고 길을 걷느냐”라고 그가 물었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직장생활을 마치고, 그냥 궁금해서요.
도착하면 아마 이유를 알게 되겠죠.”
그는 웃으며 말했다.
“걸으면 알게 될 거예요.”
그 외에도 우리는 별별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하며 하산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면 내려갈 거라던 길이 이상하게 길었다.
바닥은 진창이고, 내려온 것 같은데 또 진창이었다.
길은 없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맴도는 듯했다.
초보 순례자인 나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여러 번 왔다던 스티브도 당황했다.
몇몇 진창 구간에서는 옆의 넓은 가지를 바닥에 놓아주며 나를 건너게 도와주었다.
정상에서 봤던 지도판의 여러 하산 길 중,
비로 인해 ‘X’ 표시된 금지 코스로 잘못 든 것이었다.
숲을 빠져나와 중세 수도원의 뒷문이 저 멀리 보이자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 6시에 출발해 오후 4시에 도착.
그곳은 ‘론세스바야스’라는,
오늘 피레네를 넘은 모든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알베르게였다.
그제야 스티브와 나는 각자 체크인을 하고 헤어졌다.
씻고 나오니 몸이 노곤했다.
알베르게에서 주는 저녁을 대강 먹고,
이층 침대에 누워 발을 들여다봤다.
이미 발은 내 발이 아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발과 마주하며,
정성스레 파스를 발라주고 조용히 속삭였다.
“수고했어, 앞으로의 여정도 잘 부탁해.”
잠시 후, 다른 통로로 가던 스티브가 인사를 건넸다.
그는 무릎이 아프다며 웃었다.
나는 내 소중한 파스 한 팩을 건넸고,
그는 근육통 완화제 애드빌을 내밀었다.
우린 그렇게 짧은 물물교환을 하고,
“잘 자요.”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그 이후로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아마 다음날 새벽 일찍 떠났겠지.
그도, 나도, 각자의 속도로 걷는 것이었다.
스티브는 내게 순례 첫날의 멘토,
그리고 ‘구속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미국 청년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럼에도 길 위에서 만난 누구와도 속 깊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나의 친화력 탓일까, 아니면 순례길이 가진 힘일까.
나는 피레네의 나폴레옹 길을 완주했다.
나폴레옹도 이 길을 말을 타고 오르며
수많은 부대원을 독려했겠지.
산을 넘은 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첫날을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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