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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큰 숲 Oct 10. 2024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본인을 속속들이 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란 사람은 하고 시작하는 말에 정말 나라는 사람이 다 담길까?

나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할 때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들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거 말고

나라는 사람의 성격, 본질에 대해서 딱 어떤 사람이다 하고 정의를 내릴 수 있나?


38년을 살았지만 나는 아직도 나란 사람에 대해 잘 모르겠다.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미지 말고, 포장되지도 않은 가식 없이 나를 마주하는 것.  

어쩌면 조금은 겁날지도..


내가 처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위한 선택들을 해 오면서 그게 나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란 사람이 변하고 있다.


* 내가 생각하는 나는 끈기 있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의 나는  시험일을 정확히 16일 남겨두고 포기를 할까 내년에 다시 볼까 고민에 빠졌다. 1년을 꼬박이는 아니지만 하루 이틀을 거르지 않고 공부한다고 했는데  마무리 삼아 보겠다고 본 모의고사가 낙제점이다.  

코피를 흘릴 만큼 열심히는 아니지만 거의 반년 가까이한 게 이 모양이라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크게 온다.  진짜 대충 설렁했다면 시간이 아깝지는 않을 거 같은데  아깝다고 느낄 만큼은 열심히!라는 자세로 임했나 보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신념을  가지고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 약이 바짝 올라 입술이 다 터져가며 매달릴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아졌다.



* 부부 싸움 3일 만에 눈을 마주쳤다.

예전 같으면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손 부여잡고 사과의 시간을 거쳤겠지만, 지금은 그것마저 거추장스럽고 에너지를 빼앗기는 거 같아, 미안하단 말 한마디와 함께 내 손을 감싸오는 손길을 그냥 두었다. 새초롬히 긁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싸움하고 냉랭한 기운으로 보낸 3일에 기운을 모두 빨린듯 더 이상 싸움의 원인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시간도 갖지 않는다. 내 손을 감싸고 운전을 하고 있는 그를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려 창밖만 바라본다.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 나의 체력은 어디 자랑을 못하는 쓰레기였는데.

남들 다 가봤다는 화담숲 나도 한 번 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입장권 예약은 성공했으나 시간 예약에서 언제가 좋을까 고민하는 사이  불꽃튀는 모노레일 전쟁에 밀려 예약을 못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언덕배기 1 구간부터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식구들에게 말하면 원망을 살까 그냥 원래  모노레일은 계획에 없었던 것인 양 데리고 갔다가 1만 6천보를 걸었다. 평소 6천보 걸으면 뿌듯한 체력 거지였는데 내 발바닥이 1만 6천보를 걸어도 잘 버텨내는구나.


* 저번 화담숲은 가족들 눈치가 보여 어쩌다 한 번 버텨낸 거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무색하리만치

성수동 거리 일대를 왔다 갔다 3번을 했다. 의식하고 걸은건 아니었는데  계획을 하고 간 게 아니다 보니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동선이 중구난방, 길도 잘 몰라 헤맸다가 배가 고파졌다. 식당을 찾는 데만도 30분 동안 헤매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는데  문득 피곤함이 밀려왔다.


"오늘 뭐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


" 왜 한 게 없니, 우리 오늘 1만 5000보 걸었다! "



애들 아빠의 말에 문득 정신이 든다.

아.... 내 체력의 한계는 내가 만들었구먼, 나는 뭐 1만 5천보는 그냥 걷는 사람이었구나..



* 막 눈물 나고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나이가 먹나, 아이의 실수에 크게 놀려대며 웃어대던 사람이었는데,  아이의 연산력이 약하다는 상담서 한 줄에 그냥 나를 닮아서 약한가 보네 얘는 수 계산 연습을 많이 시켜줘야겠다 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3자리 나눗셈 자리에서 자꾸 실수를 하는 큰 아이가 답답하다.

'그래, 내가 너 어디가 답답한지 마음이 어떤지 잘 알아.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살아가지'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큰 아이의 연습장에  연필을 억지로 쥐여주며 눈에 힘을 주게 된다.

큰 아이는 저도 답답했는지 손거스러미만 자꾸 뜯고 앉았다.

" 얼른 하라고! "

윽박지르고 나서야 미안함을 느낀다.

큰 아이의 벌게진 눈가에 나도 답답함인지 미안함인지 모른 시큰함이 돈다.

연습장 위의 손은 한참을 헤맨 끝에야 연습이 좀 됐는지 자리 계산이 조금 빨라졌다.

큰 아이도 그새 기가 살아서 아까는 뭐 때문에 안됐는데 지금은 좀 알 거 같단다.

' 참 다행이네 하루 만에 알게 돼서 '  싶다가

" 이제 그거 해서 언제 수능 푸냐 ! "

말이 마음대로 안 나가고 지 마음대로 나간다.

혀끝에 인성 문제 있는 뇌가 달렸나 싶다.




어느 날은 피도 눈물도 없는 대문자 T였다가

또 어느 날은 나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막 북받쳐 오르는 F였다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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