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10년지기 친구와 통화를 했다. 말을 하다보면 신기하게도 평소에 내가 하고 있던 생각들이 불쑥 '발화' 될 때가 있다. 예기치도 못한 방식으로. 나는 친구에게 나는 인간을 '덜' 사랑하게 되었고, 오히려 더 휴머니즘적이게 되었다 라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인간 개개인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나만큼 책임감이 강한 사람도, 배려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그냥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이기적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어느 순간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우선시 될 것이고, 나는 대체로 이성적이고 규칙을 잘 따르는 FM스러운 아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간(이를 테면 3명이 친한데 2명이 짝을 지어 버스를 타야 한다거나 하는 때에 남는 사람은 단 한번의 여지 없이 나였다) 나는 홀로 남겨졌다.
기대를 하는 것보다 'deal'을 하는 게 빨랐다. 나는 회사에 다니면서 오히려 일 잘하는 소시오패스가 대하기 더 편했다. 어쨋거나 그가 나를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동안에 그는 나에게 채찍과 함께 당근도 선사해서다. 잘 써먹기 위해서였고, 그만큼 잘 빨아먹혔지만 뭐... 내가 성장했으니 이견 없다. 오히려 무능한, 정치질로 살아남은, 겉만 두루뭉실해보이는 상사들이나 팀원이 나를 공격했다. 귀찮았다.
요 근래에 느끼는 건데 나는 사람을 참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한다.
사랑이란 것은 자신에게서 타자에게로 나아가는 종류의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서 사랑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 혹은 그녀가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주는 사랑을 받으며, 또 내가 내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어쩌면 사랑에는 '주관적인 이해'와 감정이 참 많이 들어간다.
너는 나를 조금만 사랑했다거나, 너는 내가 널 사랑하는 것보다 날 아끼지 않아 이런 종류의 말은 사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란 이야기다. 물론, 사랑의 크기는 다를 수가 있다. 근데 그건 그 사람이 가진 '사랑 그릇'의 크기가 달라서일 수도 있단 뜻이다. 나의 그릇이 대야와 같은데 상대의 그릇이 유리컵과 같다면 크기의 차이는 참 크다. 하지만 그 유리컵 한 가득 사랑을 담아둔 것도 그 사람에겐 최선일 수 있다.
그럼, 그 차이를 인정하고 희생하란 말이냐 라고 심통난 채 되물을 수 있겠다. 명백하게 아니다. 그 사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찾아 가야 한다. 연인의 관계라면. 굳이 내가 대야에 가득히 사랑을 담아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 맞춰 유리컵 만큼 사랑을 표현하며 공허해 할 필요도, 넌 왜 대야만큼 사랑을 주지 못하냐고 갈구면서 그 사람의 억울한 표정을 볼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나는 인간 개개인에 대한 기대는 없으면서 '인간은 이래야 한다'라는 기준치는 높은 사람이었다.
1. 고맙다, 미안하다, 괜찮니?, 밥은, 먹었니와 같은 기본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2. 맡은 바 책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몸이 아프고 난리가 나도, 죽을 만큼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
3. 남탓을 먼저 하기보다 이 사안에 내 탓은 정녕 없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자기객관화)
4.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 (사람의 말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어야 한다)
이 4가지가 '인간'이라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에 나는 4가지가 안 되는 사람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협업을 하는 상황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고, 조별과제의 경우라면 나는 A+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내 몸을 갈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회사에 오고 보니, 어쩌다 보니 내가 일하는 영역이 협업구조가 꽤 많이 이뤄지는 곳이라 고통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주니어 시절에 다니던 회사는 방송국이었고 그 중에서도 일잘러가 많은 파트였어서 배울 점은 많았지만 저 4가지가 안 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작가진 안에는)
사기업에 가보고 놀랐던 건 아마 그 상사가 문제가 많았지만, 3가지가 단 하나도 되지 않았다. 거기다 자기 탓은 1도 없고 뭐든 남탓을 하고 타깃을 잡고, 심지어 머리도 나쁜데 정치질과 이간질을 시도하는 걸 보고 저게 인간인가... 정녕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업무 때문에 이미 몸으로 힘든데 시시때때로 날 불러서 자길 무시하냐며 갈궈되는 탓에 (안 무시했고, 내가 심지어 일을 따왔다, 회사 내 모든 인원과 사이가 좋았으며 유일하게 나와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그 상사 한 명이었다면 이해가 될까. 심지어 부사장님, 대표님이랑도 말이 잘 통했을 정도? ㅋㅋㅋㅋ)
암튼 나는 그 인간이 특이한 줄 알았는데 이직하고 보니 아니더라. 그러면서 조금 더 넓게 사람들을 보니까 보였다. 나는 소수의, 내 기준의 인간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만 보고 살았기에 몰랐는데 이 세상에는 저 4가지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저 3가지 중에 1개 정도만 되거나 아무것도 안 되거나 2개 정도는 되는데 1개가 안 되거나 하는 식으로 세상의 8-90%는 내 기준 인간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참 엄격한 아이였다. 특히 나 스스로에게.
나는 '1등을 해야만 하는' 애였다. 평범하거나 그보다 모자란 건 '살 가치가 없는 것'이었고, 1등을 하면 그나마 봐줄 만 했다. 그러니까 나는 '살기 위해서' 미친 듯이 날 몰아가야만 했고, 그렇게 몰아서 성취를 했을 때야 '그래도 괜찮네' 소리를 스스로에게 들을 뿐 그 밑일 때는 온갖 욕설을 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래서 내게 세상은 소리 없는 '전장'이었다. 나는 세상 사는 게 참 팍팍했다. 무엇이든 쉬이 되는 게 없었다. 1등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금세 다음의 목표가 주어진다. 만족을 할 수 없다. 계속 해내려고 한다. 나는 무언가 '성취'함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에게 증명하려 해서다.
어차피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존재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있나? 묻는다면... 글쎄, 실은 아니다. 그저 불안도가 높은 편이었다고 하자. 완벽주의를 갖고 있었고, 내 이름이 포함된 프로젝트는 '결단코' 망해서는 안 되며 탁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내가 그림을 잘 그렸을 때, 공부를 잘했을 때 부모님이 좋아했고 형제가 많은 환경에서 나는 걱정을 끼쳐선 안 된다는 종류의 '착한 어린이 증후군'이 있는 애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나에 대한 기대치도 낮추고, 그런 날 봐줄 거란 세상에 대한 기대치도 낮췄다. 이상이랄까, 환상이랄까 그런 게 완전히 붕괴된 세상에서 살아가던 중에 작년에는 인간 자체에 대한 기대도 완전히 붕괴됐다. 인간은 원래 '미안하다'라거나 '고맙다'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존재이며, '괜찮냐?'라거나 '밥은 먹었냐?'라는 종류의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이도 몇 되지 않는다. 특히나 먹고 사는 것의 정글이며 정치질이 난무하는 회사 환경에서는 특히나 그러하다.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은 자기 일도 잘한다. 자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기본적인 에티켓도 모른다. 에티켓과 배력은 '감정'의 영역보다는 '지능'과 '인지능력'과 관련이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이라던가 자기객관화도 안 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대체로 자기를 방어하고자 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려 애쓰며, 그 과정이나 상황 안에 '나의 문제'는 없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어려서부터 나는 그게 의문이었다.
어째서 자기가 그렇게 불쌍하지? 자기만 불쌍할 리가 있나. 모두 다 각자의 이유로, 사정으로 아프기 마련이다. 물리적으로 힘들 수 있고, 내면적으로 힘들 수 있다. 그런데 섣불리 나는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가장 불쌍하고 그런 나를 당연히 봐줘야 하고, 이 잘못은 모조리 너의 탓이라고 떠넘겨버리는 자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가 옳고 그른지 알아가던 시기에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은 '가스라이팅' 당하기에도 쉬운 존재였다. 다행히 나는 하나씩 복기해보며 이상한 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길렀기에 빠르게 벗어났지만, '내 탓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애석하게도 인간 세계에서 큰 약자가 되고 만다. 대부분이 '내 탓 아냐, 네 탓이야. 쟤가 나 욕해서 이렇게 된 거야' 등등으로 생각하며 심지어 자기 실수가 문제가 된 상황을 알게 된 뒤에도 '내 탓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집으로 '정신승리'하면 쭉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다고 그게 건강한 방식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러한 종류의 '정신 승리'가 쌓이면 그 사람은 '발전'하지 못하게 되며 아집과 고집만 가득한 늙은이가 되어버린다. 사회생활에서 조금씩의 문제와 균열이 생기며, 그것은 내밀한 인간관계에서도 표출되기 마련이라 종국에는 '나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라고 주장해대는 인간이 된다. 이것이 조금 더 나아가면 편집증적인 성향으로 나타나며 편집증으로 발현될 경우에는 더더욱 소통이 어렵다.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 된다는 이야기며, 약물이 좀 필요할 거 같은 사람들도 꽤 많이 봤다.
이렇게 까댈 거면서 무슨 휴머니즘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다. 바로 그거다.
애정을 쏟고 노력한 만큼 기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개개인에 대한 기대나 애정이 아닌, 인간이라면 이제 '이정도까지는' 에티켓을 갖춰서 말하고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겠지 하는 베이직한 기대였는데 그 기대도 번번히 부정당했고 이제 산산이 부서졌다.
1. 고맙다, 미안하다, 괜찮니?, 밥은, 먹었니와 같은 기본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2. 맡은 바 책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몸이 아프고 난리가 나도, 죽을 만큼 힘들어도) 해내야 한다
3. 남탓을 먼저 하기보다 이 사안에 내 탓은 정녕 없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자기객관화)
4. 자기가 한 말은 지켜야 한다 (사람의 말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어야 한다)
이 4가지가 되는 사람은 나와 '같은 종족'이라는 생각이 들며, 서로는 서로를 알아본다. 회사에서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는 이제 아주 놀랍고, 반가우며 동시에 애잔하다. 얼마나 개고생했을지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 혹은 그녀 역시 나를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이제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닌 한, 애정을 쏟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을 사랑, 하지 않고
바로 그래서 오히려 휴먼을 휴먼으로 보게 되었다-
저들도 저렇게 태어났기에 저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이제 알고, 구태여 내 방식대로 이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인간은 이해하려들면 이해 못할 것이 없는 종족이나, 중요한 건 '나'라는 걸 기억한다. '나의 기준'에서 맞지 않으면 굳이 말을 섞기보다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것이 편하다.
그를 '인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 마음은 넉넉해졌고, 때론 공허해졌다. 이 자리에서 나는 요즈음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에너지가 솟구치고 화가 나며 억울함(노력의 성과가 미비)이 머무르던 시기에 나는 폭발하는 글을 참 많이 썼다. 무언가 터트리고 액션이 난무하는 종류의 소설이나 영화를 썼는데, 이제는 보다 잔잔하다.
또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다.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이야기가 참 많이 쓰여진다. 마치 나처럼. 나는 '평온'을 얻었다, 그리고 '사랑'을 잃었다. 조금 더 축소된 형태의 '사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얻고, 잃고, 얻고 일까... 나는 남은 에너지를 '나'를 돌아보는 데 쓸 생각이다.
인간은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혹은 내가 조금 더 재밌는 걸 만들어갈 거라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종족이니까. 그리고 '성취'가 나란 사람을 움직이는 좋은 동력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쓸데 없이 일터에 쏟아부었던 에너지를 '내 창작'으로 돌려내는 일을 거듭 연습하고 있다. 잘 되지 않고, 때론 잘 될 때가 있다. 꾸준히 하다 보면 워라밸(work-life balance / write-life balance)를 찾아가겠지.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라는 것 말고는 없다. 내가 어떠한 삶을, 미래로 나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것'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을 따름이다. 스물 여덟에 죽지 못해 마흔을 준비하는 나란 사람은 어떠한 소망 하나를 마음에 품는가... 스스로 물어보면 하나 남는다.
마흔이 되기 전에 회사 밖에서 '나의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일, 이야기 만드는 것을 컨설팅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글쓰기만으로 일이 되지 않는다면 강의 일을 할 것이고, 꾸준히 나의 글을 써서 '2차 창작'이 될 만큼 잘 다듬어 볼 생각이다. 즉, 저작권료와 강의료로 생계를 충분히 영위할 만한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 게 39살까지의 나에게 주는 30대의 미션이다.
10대에 나는 죽지 않기 위해 글을 썼고, 천부적인 글을 하나 남기고 스물 여덟에는 죽어야지 생각했다. 20대에 나는 어떠한 글을 쓰는 게 좋을지 헤매다가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고 미치게 일하며 몸을 갈다 보니 29살이 된 나를 목격했다. 물론, 28살에 나는 생애 가장 불안했다. 익숙한 우울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조증 성향이 나타나서 난생 처음으로 상담소며 정신과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잘 맞는 멘토를 찾지 못해 좌절했지만... 처음으로 지금껏 살아온 방식으로 살아선 안 된다 생각하게 된 첫 계기였다.
조증과 울증 사이에서 방황하며, 또 때론 괜찮아지며... 조울과 평정의 사이클을 타는 동안 나는 무엇으로 살았을까... 나와 세상과 사람과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가 부서진 29살과 30살을 보내고서 31살이 되었을 때 나는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의외로 모든 게 바스라진 잔해, 폐허를 딛고 서 있는 게 아프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 밑바닥의 밑바닥을 진창을 구르며 본 게 최악은 아니었다.
요즈음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세계를 자꾸 바라보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기 때문인 거 같다. 열렬한 사랑은 지나갔다. 나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던 때의 과거는 이제 없다. 나는 이전만큼 열렬하지 않아 꽤 자주 공허하다. 그 공허에 또 다른 방식의 '마음'을 채워야 하겠다. 휴머니즘도, 인간에 대하여 내 나름의 이해를 하려 하는 것도, '나'라는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벽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이다. 삼십대의 나의 고찰이 모이면 나는 꽤 괜찮은 작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올해 또 한번의 '구렁텅이'를 벗어나와서 나는 생각한다. 어쨋거나 나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만 죽기 위하여. 언젠가 죽을 날을 향하여 한 걸음씩 걸어가며 나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