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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 Nov 16. 2023

감사일기_23.11.16 목요일

아들 영어학원 선생님께서 성적 상담 겸해서 안부 전화를 주신다. 수술을 앞두고 입원을 하였을 때, 웃프게도 아이들 영어 숙제가 걱정이 되었다. 이제 열 살 아들에게는 과제와 학습량이 많은 편이라 엄마표 피드백을 거쳐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없어서 고민 끝에 영어학원 선생님께 다짜고짜 내 처지를 사실대로 말해 버렸다. 숙제와 수업이 엉망이어도 그냥 학원만 오가게 해주시라며 돈 버리는 소리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당일 테스트 미통과 거나 과제 미수행이면 아이를 남기는 곳이다. 한 번도 남은 적이 없게끔 아이를 단속해서 보냈던 나로서는 커밍아웃을 하여 최선의 방법책을 마련한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에 우셨고 본인 남편이 내 처지와 같으셨고 지금은 관해 판정을 받으셨노라며 뜻밖의 위로가 쏟아졌다. 그렇게 깊은? 사이로 거듭난 우리는 전화로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선생님의 전화는 따듯하고 유쾌하고 기운이 난다. 분명 아들이 달마다 보는 먼쓸리 테스트의 상담 전화인데 나는 인생 상담을 하고 있고, 선생님은 경험담을 해주시는 이상한 상담전화다. 학원에서 입시 설명회가 열리는데 오지 말라셨다. 그날 설명회의 요점만 알려줄 테니 어딜 오냐며 면역력 챙기시라며.. 그런 사이다. 선생님의 외아들이 군 입대 후 파병지원을 해서 맘에 안 든다 하셨지만 결국은 본인뜻대로 움직이게끔 허락하셨다.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도울일은 기도뿐이구나 싶었다. 이처럼 생각지 못한 곳에서 깊은 인연을 맺고 진심으로 위로를 받고 감사를 전하는 사이가 생겨났다.

대학친구들 단톡이 오랜만에 울렸다. 친구 한 명은 스페인에서 살고 있고 아기가 백일 지났는데 아이 사진과 함께 안부를 전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삶 속에서 바쁘고 별일이 없어 보였다. 그곳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안 한 건지, 하기 싫었던 건지, 못한 건지, 분간할 수 없지만 스페인에 있는 친구의 행복한 일상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닌가 싶어서, 그냥 그런 대화만 맴돌다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대화가 내가 병명 알기 열흘 전이었다. 그날 내가 신나게 재잘재잘 뭐라고 많이도 썼던데 역시 사람은 한 치 앞을 모르는구나. 너무 놀랄 거 같아서 일단 오늘은 접어두었다. 친구들이 별일 없는 일상을 지내고 건강해서 감사하다.

종일 비가 내린다.

아이들이 학원차량 무사히 오갈 수 있어서 감사.

남편이 잠시 들러서 점심을 같이 먹어주어서 감사.

A집사님이 따님 중보 기도 부탁해 주셔서 감사. 오늘도 모든 일을 감사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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