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윤헌 Dec 26. 2023

남상(濫觴)

                                                                       

 가난하고 어린 시절 잔칫날 잡채를 보면서 언제 배불리 마음껏 먹어볼까?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55년이 흐른 후 지금은 잡채도 그리 고급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대학 시절 빨리 졸업하고 돈을 원(怨)도 한(恨)도 없이 벌고 싶을 때 우연히 들른 병원 입구에 ‘네 시작은 미흡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라는 작은 액자를 보고 저것은 내가 꼭 이루어 내고 말 것이라고 다짐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이나 대학 시절이나 현재 생활이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니, 끝이 창대까지는 아니라도 반 정도의 성공은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고 골똘히 생각해 봅니다.     

 아침 독서를 하다가 새로운 단어 ‘남상’을 보았다. 무슨 뜻일까? 한자가 없으니, 한글로는 무엇을 뜻할까? 한참을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남상(濫觴)’ -사물의 맨 처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 백과사전을 펼쳐보니 ‘술잔을 띄울 정도의 적은 물. 배를 띄울 정도의 큰 강물도 그 근원은 술잔을 띄울 정도의 적은 물이었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의 시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출전을 살펴보니 순자(荀子)의 자도(子道) 편에서 공자가 자로를 꾸짖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느 날 자로(子路)가 화려한 옷을 입고 공자(孔子)를 뵙자, 공자가 말했다. “유(由, 자로)야, 어찌 이렇게 잘 차려입은 것이냐. 저 장강은 민산에서 발원하는데, 처음 시작할 때 그 근원은 술잔을 띄울 만한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강과 나루에 이르면 배를 타지 않거나 바람을 피하지 않으면 건널 수가 없을 만큼이 된다. 그것은 하류에 물이 많아서가 아니겠느냐. 지금 너는 의복도 화려하고 얼굴에는 거만한 빛이 가득하구나. 이러니 천하의 누가 너에게 간하려 하겠느냐.” 자로는 급히 나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들어왔는데, 그 표정은 매우 자연스러웠다.(子路盛服見孔子. 孔子曰, 由, 是裾裾何也. 昔者江出於岷山, 其始出也, 其源可以濫觴. 乃其至江津, 不方舟不避風, 則不可涉也. 非唯下流水多邪. 今女衣服旣盛, 顔色充盈, 天下且孰肯諫女矣. 子路趨而出, 改服而入. 蓋自若也.)」     

 1989년 3월 현재 고등학교에 국민윤리 선생님으로 부임했다. 사글세로 보증금 없이 3만 원에 방 하나가 전부였다. 부엌도 없고 취사도구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없이 잠만 자는 방이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 매점에서 천 원으로 제공했고 저녁 식사는 식당에서 먹는데 매일 된장찌개만 끓여 주었다. 키 183cm에 몸무게 68kg으로 날씨 변화가 조금 있으면 콧물이 나올 정도로 면역력이 약했다. 식사가 어려워 결혼을 일찍 서 둘렸다, 아내와 2년 동안 교제했기에 결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는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부담 주기 싫어 혼자 힘으로 결혼하려 했고 아내도 친정이 어려워 간소하기를 원했다. 아내 자취 집 2층에 방 한 칸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신혼살림은 아내가 쓰던 자취 도구에 이불장 하나 더 마련하는 선에서 혼수는 끝냈다. 외적 환경이나 경제적으로 참 보잘것없는 신혼살림이었다. 샤워 시설이 없고 아주 작은 부엌에서 연탄불에 물을 데워 방 밖 수도에서 머리 감고 출근해야 했다. 그 당시 서민 생활이 다 비슷하다고 해도 우리 처지가 좀 초라한 편이었다. 결혼식 마치고 첫 봉급부터 아내의 저축은 시작되었다. 봉급에서 75% 정도를 저축하였다. 여름이 되어도 선풍기 하나 없이 임신한 몸으로 버티어 냈고 딸이 태어났다. 딸이 태어나 생활비가 더 들어도 저축을 줄지 않았다. 겨울 방학에 부모님 댁에 다녀와 나는 숙직하러 갔고 아침에 퇴근하니 아내와 딸이 연탄가스를 마셔 겨우 살아났다. 다행히 딸이 많이 울어 깨어났기에 망정이지 둘 다 먼 길을 떠나보낼 뿐 한 것이다. 부랴부랴 연탄보일러가 아니라 기름보일러가 설치된 월세방을 찾았다. 연탄 부엌이 아니라 기름보일러가 있고 가스레인지가 설치된 방을 구하는데 산속 깊숙한 곳에 햇볕이 거의 없어 낮에도 전깃불을 켜야 하는 방을 구했다.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 내려와 시내버스 타고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학교로 출근했다. 아침 6시가 출근 시간이다. 6년간을 지각없이 다녔다, 그 사이 아들도 태어나고 저축한 돈이 모여 24평형 아파트도 청약하여 내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아파트에 입주하고 1년 후에는 딸이 초등학교 입학도 했다. 남들에게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이사하기 3달 전에 형님이 쓰던 자동차도 내게 물려주었다. 첨 시작은 남상이지만, 어떤 주변 인물도 부럽지 않은 처지가 되었다.      

 공직에 특징이 시간이 가면 호봉제가 높아 살림살이가 좋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마약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들이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사기업에 취업한 주변 친구와 비교해 보니 월급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고민이 된다고 한다. 공무원 월급은 ‘옹달샘’이다. 많이 나오지도 않지만 마르지도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아빠도 처음에는 주변 친구와 비교해 수입이 너무 적어서 너희가 교사가 되려고 이야기할 때 반대한 기억이 있다. 교직 35년째 접어드니 주변 친구들은 모두 퇴직하여 어렵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는 아직 현직에 있고 호봉이 높아 월급이 그리 적지는 않아서 좋다. 비록 시작은 아주 작은 옹달샘이지만 오래가면 낙동강 강물이 될 것 같다고 상담해 주었다.


 최근 진로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지혜는 없지만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은 한 갑자(甲子) 살아 본 사람으로 상담을 통해 제시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능력이 출중한 학생은 자기의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여 취업하거나 연구 결과물로 자영업을 하면 된다. 보통 먹고사는 문제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람은 당장 현실적인 문제에 모든 생각과 노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성적이 상위에 있는 고3 여학생에게 진로를 상담하면 대부분이 ‘간호학과’를 선호한다. 적성이 맞느냐고 물어보면 적성보다는 취업이 잘 되니 진로를 정하였다고 한다. 간호학과 출신이 취업하여 장기간 근무하는 사람이 40%가 안 된다는 신문을 보면 자기의 적성이나 흥미는 무시하고 진학하여 취업하다가 낭패를 보는 모습이다. 자기의 적성, 흥미, 능력을 고려하여 처음은 남상(濫觴)이지만 큰 강물이 되는 진로를 찾는 것이 주요함을 느낀다.     

 30년 전 학생의 진로를 위해 상담을 많이 한 학생의 일이다. 1990년대 초 농업을 하는 집안의 학생이 많다. 자기 아버지의 농사를 많이 도와주고 덩치도 좋고 머리가 좋은 학생에게 장래 비전이 있는 농업 전문학교의 진학을 권장했다. 조건이 농사짓는 땅을 소유하면 4년간 학비 면제에 선진 농업기술 견학과 농업 전문교육을 시키고 졸업하면 당시 1억 원을 저금리로 대출해 준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선생님의 진로 상담을 정중히 거절하고 체육 교육학과로 진학했다. 졸업 후 체육 교사를 하려고 노력하다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삿짐 나르는 사다리차로 전향하여 지금은 사다리차 종합 대여점과 몇 가지 연관된 사업으로 성공한 제자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예견하고 실행하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남상(濫觴)이 큰 물이 되는 조건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성과 인간적 품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 핵심 요소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한다.         

                                                              2022. 11. 17  憲           

작가의 이전글 믿음(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