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아침

by 석정

여유로운 아침


아침에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하면서 등교하는 학생의 표정을 살펴본다. 괴롭고 일그러진 표정은 아니라도 생기(生氣) 있는 모습은 아니다. 한참 뛰어놀고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연구하고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 고등학생의 삶의 단기적인 목표는 오직 하나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이다. 삶의 다양성 속에 행복 만들기와 더 좋은 행복 만들 준비가 아니라 오직 부모와 선생님과 합작하여 창출한 목표가 남이 인정하는 대학에 진학하기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부모의 경제력에 비례한다는 통계표를 보면 학교 교육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한 명의 교사로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 6.25 전쟁 후 세계 최고 가난한 나라로 원조(援助)에 의지하여 살아오던 우리나라가 60여 년 만에 세계 수출입 1조$ 클럽에 가입했고 수출입 규모로는 세계 6위에 해당한다. 1964년 1억$ 수출을 시작으로 1968년 10억$, 1977년 100억$, 1995년 1,000억$, 2017년 5,731억$ 수출하여 2019년 1인당 국민소득 30,000$ 시대로 2천만 이상 인구를 가진 나라 중 9위다. 이 정도 빠른 성장을 위해 물적 자원이 부족한 국가에서 의존해야 할 것은 인적자원의 능력에 기댈 수밖에 없으니 교육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문에 누가 벼슬을 했는가를 중히 여긴다. 그래서 묘비명에도 ‘정승 00 洪氏’ ‘정경부인’ 관직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현재는 ‘대통령 000’ ‘전 국무총리 000’으로 기재한다. 서양에서는 영국의 노벨상 극작가 '버나드 쇼'는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고 적혀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관(官)을 중시하고 관직을 얻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이다. 그래서 우리 역사상 상류 계급의 사람은 공부하여 입신출세하는 것은 당연하고 일반 평민 이하 계급은 교육조차 받기 힘들었기에 목민관에 대해 동경과 순종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역사적 전통 때문에 우리나라 부모들도 자제들의 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몰입한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Baby Boom)에 태어난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역대 최고였을 것이다. ‘맹모삼천지교’를 몸소 실천하여 강남의 아파트 가격을 상승하는 데 일조를 한 인물들이다.

연합고사로 고교 평균화가 이루어지자 ‘S, K, Y’ 대학교에 입학시킨 숫자가 명문 고등학교의 순위가 되었다. 그러니 학교에서는 특목고(과학고, 외국어고, 자사고)에 인재를 빼앗기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기들끼리 경쟁에 돌입한다. 그것의 발단이 0교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다. 0교시로 불리는 7시 30분 등교와 자율학습 끝나는 10시 30분까지 총 15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고 종례 할 때 학생들 인사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씁쓸한 웃음을 만든 시대적 기억들이다. 이렇게 공부하고 경쟁해야 국가적 경쟁력도 생기고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닫는’ 국민교육헌장의 지침을 따르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이런 인식에 그 어떤 부모도 교육 현장의 선생님도 다른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사들은 좋은 대학에 한 명이라도 더 입학시키는 것이 선생님의 존재 이유가 되었고, 고3 담임 선생님 한다고 하면 능력을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좋은 대학 입학이 좋은 직장 입사이고 좋은 직장에 입사가 연봉이나 복지가 좋고 좋은 회사 취직은 유능한 사람하고 결혼하고 머리 좋은 아이를 출산해야 행복이라는 등식에 이견(異見)을 낸다는 것은 사회적 비난으로 추방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으로 교직을 수행하는 것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언론사도 대학 입시가 끝나면 고등학교별로 유명 대학 입학한 학생 숫자로 학교의 순위를 정하고 고등학교 입학 선택권이 주어진 학부모도 입시성적이 좋은 학교에 입학이 곧 인생의 승리라는 등식이 되듯 선호하는 학교, 선망의 학교가 되었다. 이제 학생 수가 감소하고 대학에 들어가도 취업이 불투명하고 좋은 대학에 간다고 해도 좋은 직장에 취직이 힘들어하니 종전의 사고(思考)와 많이 변할 수밖에 없다.

1970년 전후하여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다. ‘근면’ ‘자조’ ‘협동’을 구호로 내걸고 새벽종이 울리면 일어나고 별을 보며 집에 들어가는 일꾼이 참된 일꾼이라고 자부하던 시절, 중동 붐이 일어났을 때 섭씨 50℃를 웃도는 사막에서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경제 발전이란 큰 틀을 이루었다. 열심히 일하면 소득이 오르고 남들보다 번듯한 집과 맛있는 고기 배부르게 먹고 자동차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행복의 기준이라 일요일도 쉬는 것은 죄악이란 생각으로 살았던 시절도 있었다. 제조업이 발달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잔업(殘業)의 수당을 이용하여 근로자들을 토요일 일요일도 일하게끔 만든 것이 우리나라 기업이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퇴임하여 사회에 나오니 즐겁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이라고는 등산밖에 없다는 볼멘소리가 푸념으로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2019년 3월에 지난날을 되짚어 보자.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지난날이 지금의 풍요로움, 편리함, 안락함을 가져다준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자.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좀 더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행복 만들기 연습’ ‘여유로운 여가 생활의 정착을 위한 연습’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사고 기반 다지기 연습’ ‘공동체나 국가 발전의 디딤돌을 위한 봉사활동 기반 다지기 연습’을 교육의 지표로 삼고 수월성(秀越性) 교육도 지금 같이 전체를 대상으로 무한경쟁이 아니라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여 세계적인 학자가 되도록 기초 교육을 철저히 하는 교육도 필요하리라.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학업 능력을 청소년이 가지고 있고, IQ가 가장 높은 나라라고 자부하지만,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는 사실은 교육지표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임을 입증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얼마일까? 10점 만점에 5.895점이라 한다. 그래도 5점 밑으로 떨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1인당 GNP가 30,000$가 넘는 소득 순위 세계 9위라고 하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156개 국가 중 54위라 한다. 물론 소득과 행복지수는 무관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보면 기본적인 소득 없이 행복을 추구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교육이 필요한 시기이다. 빈곤한 농업사회 시절에 태어난 세대는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쩌면 주어진 운명으로 간주하더라도 어느 정도 먹고 살 정도의 경제적 여건이 갖추어진 나라에 태어난 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벌 3세나 부잣집 아들의 삐뚤어진 행위로 매스컴을 장식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기우(杞憂)는 생각하지 말자.

인구 절벽이란 말을 한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에 비하면 현재는 2/5 수준으로 출산율이 떨어졌다. 2018년도 출생한 인원이 326,900명이란 통계 수치를 보면 앞으로 종족 보존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더 심각한 것은 결혼하는 숫자가 1년에 42만 쌍이던 것이 2018년에는 27만 쌍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심각할 수밖에 없는 사회 현실이다. 왜 이런 사회 현상이 대두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무한경쟁과 성장 일변도 정책, 빠름의 정책이 낳은 대참사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무한경쟁이 아니라 여유로운 여가 생활의 정착을 연습하도록 하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저시급 인상은 놓고 무한 대립해 있다. 화두를 던진 것은 매우 좋은 일이나 너무 급격한 개혁으로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조금 늦어도 반드시 시행해야 할 일이다. 저축하여 재산증식이 베이비붐 세대의 의무라면 지금의 세대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주 5일 근무를 시행할 때 주 5일 근무하면 나라가 망하고 나라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도 망한다고 생각하고 주 5일을 반대했다. 지금은 주 5일 근무를 안 하는 기관이 이상해 보인다. 사람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정책이 변하고 제도가 변한다. 변하는 것이 편리함으로 변한다. 그렇게 편리하게 변해도 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더 능률적이다. 학생인권조례도 처음 시행할 때 학교가 무너지는 것처럼 이야기하였지만 지금은 학생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된다. 학교 무너진 곳이 어디에도 없다. 새벽종이 올리는 시간이 청소차 지나가는 시간인데 곳에 따라 새벽 4시 30분부터 ‘새마을 노래’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전 주민이 잠을 깨우고도 미안함이 하나 없던 시절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 밤이 늦도록 일하여도 밥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이지만 지금은 새벽종이 올리지 않아도 밥 잘 먹고 여유 있게 살아간다. 등교 시간도 7시 30분에서 8시 30분으로 늦추며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일어날 것 같아도 그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침 등굣길 학생들의 밝은 활기가 느껴진다. 이참에 학생 등교 시간을 한 시간 더 늦추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푹 자고 여유 있는 삶의 기반을 다지며 자기 계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아무 이상이 없을 것 같다.

2019. 3. 22 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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