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아이가 이제라도 들어야하는 말

by 아빠는치료사


아내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자존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아내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주 물어보았고, 같이 마음 아파해 주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편이 되어 주지 못했던 그 소녀의 편이 내가 되어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는 차츰차츰 좋아져 갔다.


아내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한 것을 반성했고, 아버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사과의 편지를 쓰고, 전화를 먼저 하는 등 노력했다. 아내의 노력에 아버지도 오랫동안 교류를 하지 못했던 딸과의 소통을 늘려갔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 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아내는 우울이 문제라면, 나는 짜증이 문제였다. 시험이나 승진 등 예민한 이슈가 있을 때, 혹은 아프거나 급할 때 등 나는 짜증을 자주 냈다. 내 아버지에 비하면 빈도와 강도가 훨씬 덜한 편이라, 내가 큰 잘못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딸이 아빠는 다 좋은 데 화낼 때 "무섭다"고 했다. 평소 다정한 편이라 화낼 때 더 무서워 하는 거 같았다.


나 역시 숲에서 시야가 가려져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가는 길을 찾으려면 어두웠던 어린 날의 부끄러운 집안얘기를 아내에게 해주어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 집은 단칸방에 네 식구가 다 같이 먹고 잤다. 어느 주말 여자 두 분이 집에 부채상환을 약속받기 위해서 왔다. 교회 분들인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께 돈을 빌려줬는데, 상환이 늦어지니, 돈을 갚아달라고 말하기 위해 온 것이다.


어린 내 눈에 영화에 나오는 못된 사채업자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 아주머니들이랑 얘기를 잠시 나누시다, 장롱에 있는 이불들을 다 꺼내어 방 중앙에 놓고 불을 질렀다.


"다 같이 죽자!"


아버지는 죽겠다며 소리 질렀고,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온통 난리가 났다. 이불들이 그렇게 불에 잘 타는지 몰랐다. 불길은 금방 솟구쳐 천장에 닿을 듯 타올랐다. 놀라서 달려 온 집주인아주머니와 채권자 두 분의 아연실색한 표정이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타들어 가는 불길 앞에서 울고 계셨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가 많이 슬퍼서 속상했다. 불은 꺼지고, 사람들은 질려서 도망가고 방바닥에는 시커멓고, 동그란 자국이 선명하고 크게 남았다.


나는 그날 얼음이 되었다. 아무에게도, 누구에게도 이 야기를 해본 적 없었다. 그리고 무서웠던 나에게 부모님은 사과해 준 적이 없었음을 마흔이 넘어서 아내를 돕는다고 과거 상처얘기를 하다가 알았다.



이 사건이 얼마나 내게 큰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딸이 아빠가 무섭다고 말할 때, 어린 시절의 내가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감정이 얼핏 떠올랐다. 문제는 간혹 무서워해도 '퇴근하면 환영받는' 아빠이기에 단점이 있어도 괜찮은 아빠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말 그대로 아버지의 불 같은 화를 십몇 년 당한 나로소는 아내와, 두 아이가 나로 인해 느꼈다는 공포가 별거 아니게 느껴졌기 때문인 거 같다. 잘못된 기준을 마음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


"라테는 말이야~"


라고 불리는 꼰대 논리를 갖고 가족들이 이 정도는 수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아내에게 부탁을 해보았다.


과거의 상처 얘기를 하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생각해 보니까, 그때 엄청 무서웠는데, 아무도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했더라.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기에, 좋은 기억만 남기고, 아버지의 과거의 잘못은 다 덮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기억 저편으로 자꾸 처박아 두려고 했었던 거 같아. 하지만 지금도 이 사건을 얘기하면 마음에 화가 나는 것 보니, 아직도 내게 영향이 있는 거 같아. 자기가 나한테 '무서웠지? 미안해'라고 얘기해 줄래"


비록 내가 부탁해서 했지만, 아내는 나에게 진심으로 눈물을 글썽거리며, 위로해 주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미안해.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나도 눈물이 났다.


눈물과 함께 얼음이 되었던 소년이 조금은 풀려나는 것 같았다.


얼음-땡 놀이를 하면 얼음이 된 아이는 "땡" 해줄 때까지 움직이지 못한다. 극도의 두려움을 느끼면 사람의 뇌는 이성적 사고를 자동으로 차단하고 '회피' 혹은 '투쟁' 중의 약자 택일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아이는 계속 '얼음 아이'였던 것 같다. 회피를 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온 가족이 이 사건을 언급하지 못했다. 모두 회피했다. 그래서 이 영역만큼은 성장하지 못했다.


"아들, 아빠가 집에 불 질러서 많이 놀래고 무서웠겠다. 정말 미안하다. 아빠가 빚이 많아서, 사업도 실패하고 너무 좌절감이 컸었어. 그래서 큰 실수를 했어.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어른이라고 행동이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어른이다.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어른스럽게 이렇게 말해줬어야 했다. 덮어두기만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런 폭력적인 장면을 어린아이들에게 노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일을 겪으며 자란 나이기에 자녀가 무섭다고 해도 그 말이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나에게 보내는 사과의 메시지


오늘 저녁엔 거울 앞에 서서 사과를 해보자.
"미안해!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나를 미워했어" "미안해! 안그래도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 그걸 숨기려고 했어. 당당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라고 소리내어 말하자.
-자존감 수업(윤홍균)-



자존감 수업책을 보면,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에게 사과하라고 조언한다. 자존감이 높다고 자신하던 내게도 사과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너를 두고, 꺼내주지 못한 것 같아. 많이 무서웠을 텐데, 이제야 와서 미안해. 이제 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넌 다 이겨내고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비록 내가 어린 나에게 쓴 메시지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거 같다. 이 글로 인해, 미래의 나는 짜증과 화를 더 잘 다뤄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빠는 치료사*



P.S


혹시 옛날 아픈 상처가 생각나셨나요? 아래처럼 자기 자신에게 사과해 보시면 어떨까요? 저도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아요. 거울을 보고 해도 좋고 수첩에 한번 써봐도 좋습니다.

(자신 이름)야,
그동안 널 잘 돌봐주지 못했어. 너를 나무라고, 단속하려고 했지,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어. 그래서 너무 미안해. 오랫동안 그 자리에 너를 두고, 꺼내주지 못한 것 같아.
많이 무서웠을 텐데, 이제야 와서 미안해. 이제 같이 일어나자. 넌 다 이겨내고 좋은 사람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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