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3-자기 용서 실습

by 아빠는치료사

눈엣가시였던 그 사람


학창 시절 내내, 마주치기만 해도 기분이 상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마주하는 순간이 가장 싫었다. 그 존재 자체가 싫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내 아버지다.


아버지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화가 나면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던져 부수곤 했다. 손찌검도 서슴지 않았다.
자상한 면도 있었지만, 짜증과 분노의 빈도와 강도가 너무 잦고 컸다.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의 인기척이 들리면, 조금 전까지 화목하게 이야기하던 누나와 나, 그리고 엄마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에 오래 있었던 척, 어색하게 방문을 열고 나와 긴장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아버지의 화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생 의상실을 운영했다. 직접 디자인을 했고, 솜씨가 있었는지 손님이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손님에게도 거리낌 없이 화를 냈다.
아버지가 무서워 가게 문 앞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린 손님도 많았다.


돈을 많이써서, 손님이 무례해서, 혹은 그냥 기분이 나빠서…
당시 나는 그 이유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그만 치와와도 대형견을 보면 크게 짖는다.


무서워서 그렇다고 한다.


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이, 배운 것 없던 아버지는 세상이 두렵고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치와와처럼, 스트레스가 쌓이면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는 자신 안의 스트레스를 평화롭게 풀어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동생 넷을 챙기고, 아내와 자녀를 부양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 순간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용서되기 시작했다.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누그러진 첫 번째 이유는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같은 남자로서 느낀 동질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배움도, 기술도 없이 여러 일을 전전하며 고생한 걸 알기에, 그 ‘살아남기’가 내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거라 짐작하게 됐다.


나는 아버지를 ‘결심하고’ 용서한 게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용서가 됐다. 그건 아버지가 내게 주신 분노보다 사랑의 크기가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면 결국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없다.
부모가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주거나,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하면 아이들은 우울하거나 분노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잘 삐지거나, 자주 화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한 우울과 분노는 또다른 우울하고 분노한 자녀를 만들어 낸다.


이 지독한 사슬을 누가 끊을 것인가?


현재를 사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로 인해 굶주림은 없이 자랐다.


그래서 버림받은 배신감 속에서 자란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런 조언을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감히 하는 것은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같이 아프고 속상한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결단


부모(과거)를 용서하는 것은 자기 자신(현재)을 용서하는 것이고, 자신의 자녀(미래)를 구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준 상처로 아직도 분노와 슬픔 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면, 그 대물림을 끊기 위해 용기를 내길 권하고 싶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혹시라도 그 용서가 나와 내 자녀, 그리고 다음 세대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시도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이전에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고?


뭐 어떤가? 인생은 삼세판...한번 더...


- 아빠는 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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