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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Sep 24. 2024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04


04.


에스테는 별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중국의 국제우주정거장인 ‘톈궁’이 그의 고향이었다. 에스테의 부모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정거장에 상주하며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태어났을 수도, 우주 관광을 위해 머무른 잠깐 사이에 누군가 즐긴 여흥의 결과물이 에스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에스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에스테에게는 그를 죽지 않게 돌봐준 동료들이 있었다. 정거장에는 언제나 고아와,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들, 신분을 지우고 스스로 드넓은 정거장 어딘가에 자신을 내던진 망명자들로 넘쳐났으니까.


에스테라는 이름은 정거장에서 만난 짧은 머리의 어떤 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에스테의 밝은 갈색 눈을 보며 자신이 탐사를 다녀온 행성과 너무나도 닮았다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주의 어둠보다 새까만 그의 머리칼은 아이러니하게 인간이 만든 어떤 불빛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구걸과 소매치기로 살아오던 에스테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신분증명서나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에스테를 시스템에 몰래 집어넣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너 국적 어디로 할래?’


에스테는 지구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에스테는 그저 언니를 닮고 싶어서, 언니와 같은 국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그래? 그럼 우리나라로 하자. 거긴 지구가 아니거든. 네 눈이랑 똑같은 연갈색의 땅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야.’


에스테는 생각했다. 언니의 이름을 알았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스쳐갔고 부모와도 같았던 그 언니의 존재 역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매번 기름때가 가득 묻은 얼굴과 손을 들고, 무너져가는 숙소에서 숨죽이며 에스테에게 돌아온 언니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깨달았던 건 잔인하게도 언니의 사인이 무엇인지 에스테가 깨달았을 때였다.


‘…의 유일한 가족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너로구나, 에스테. 네 앞으로 남긴 유산이 꽤 많아. 이것저것 복잡한 행정은 아저씨가 맡아서 도와주마. 명복을 빈다.’


언니의 동료인 것 같은 남자가 어느 날, 에스테에게 다가와 비보를 전했다. 언니는 데브리 회수 중, 실종된 지 한 달이 지난 후에 사망처리되었다고 했다. 에스테는 물었다. 언니가 발견한 행성인 ‘에스테’를 알고 있냐고.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언니의 고향은 어디냐고. 그러자 남자는 말했다.


‘…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과대망상증이 심한 환자였어. 어린 시절에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미쳐버렸다는 건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야. …는 어엿한 집도, 부모도 있는 사람이었어. 자신이 만든 상상 속에 자신을 가두기 전까지는. 어쨌든 걱정은 마라. 그 이외에 별다른 거짓은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짐을 챙기자. 너처럼 어린아이가 무법천지인 우주 정거장에서 굴러다니도록 둘 수는 없으니. 분명 …도 그걸 바랄 거야.’






새까만 망망대해에 있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라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많이 외롭고 불안한가 봐. 적어도 언니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이후로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손에 꼽으니까.


에디의 도움으로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 정산을 반나절 만에 마친 에스테는 곧장 우주로 향했다. 두 달간의 급여와 수당을 모두 우주선 수리와 개조, 그리고 여분의 연료를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에디는 에스테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결정은 번복시키려 노력했지만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냥 가설일 뿐이야, 가설. 우연히 저 우주선의 항해 로그를 검색해봤을 뿐이라고. 난파된 우주선이 주는 정보에는 오류가 있다는 걸 너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 아냐, 에스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공교롭게 겹쳤다. 늙은 정우가 타고 있던 우주선의 기록 일지를 살펴보니, 우주선이 마지막으로 운행을 했던 날은 에스테가 그 우주선을 발견한 날, 7월 26일이었다. 게다가 이전의 기록은 전부 소멸되고 없었다. 수상해. 마치 이전까지의 기억을 누군가 억지로 잘라내 버린 듯이. 어찌 됐건 그때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아주 잠시나마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 숨을 쉬었다는 말이다. 에스테가 머물렀던 그 시간대와 좌표에서 정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모르는 방사성 물질의 부작용으로 급속도로 나이를 먹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에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에스테에게 전했다.


“그… 장소에서 정말 많은 실종 사건들이 있었어.”


에디가 파일 하나를 에스테에게 전송해 주었다. 그가 들렀던 좌표에서 일어난 각종 실종사건과 추돌사고를 에디가 직접 연대별로 정리해놓은 파일이었다. 에스테가 정보를 샀던 십 년 전의 우주여객선 사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비록 실종된 것이 아니고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긴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승객들 중 극히 일부의 시신과 우주선 잔해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주에서 시신을 찾을 수 없는 게 대수겠냐만.


“이 끔찍한 일들을 정리해놓은 이유는 단 하나야. 나 역시 정보원으로서 이 장소를 소개해 주고 수수료를 받기 위해서였지. 사고가 많은 곳일수록 치울 쓰레기도 많을 테니까. 그런데 모든 데브리 회수 기사들은 허탕만 치고 돌아왔어. 나는 겁쟁이들이 직접 그곳에 가지도 않고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곳이라 께름하니까 거짓말을 치는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웬걸. 모두들 그곳에서 일주일 이상을 머무르며 콩고물을 찾아 헤맸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시간만 낭비했던 거야. 그 좌표계에서 뭔갈 발견하고 기항지까지 가져온 건 에스테, 네가 처음이야.”


처음.

이런 상황에서 처음이라는 말이 에스테의 가슴에 찌르듯이 다가왔다. 에디가 자신을 우쭐하게 하려고 그런 말을 건넨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이라는 말은 어쩐지 에스테를 쑥스럽게 했다.







‘우와, 이렇게 많은 양의 데브리를 가져온 사람은 처음 봐요. 선배 진짜 대단한 사람이잖아?’


정우는 두 번째 출장이 끝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정산을 하고 있는 에스테에게 말을 건넸다. 그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우의 감탄은 호들갑과 곁들여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눈이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본다느니, 멀리서 봐도 선배의 우주선과 조종간에 앉아 있는 선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느니. 긴 여행 끝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행성을 드디어 발견한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다느니. 대체 어디서 배워 온 말솜씨인지. 사람의 온기를 못내 그리워하면서도 사람과의 관계나 친밀함을 경계했던 에스테에게, 정우는 갑작스레 그의 코를 간질이는 봄날의 꽃가루 같았다. 감추고 숨기고 싶어도 어쩔 줄 모르게 튀어나오는 눈물처럼.


어느 날은 정우에게 조금 민감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에스테는 이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정우에게 털어놓은 뒤였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정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신을 알기 이전의 정우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자 정우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특별한 얘기는 없어요. 그저 사고로 부모를 잃었을 뿐예요.’


우주 여객선 사고였단다. 그놈의 여객선 사고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행복과 유년기를 빼앗아간 건지. 애초에 인간이 우주를 목표로, 계속해서 꽁무니에서 불을 뿜어대며 날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의문이 들었다. 이카루스 같잖아. 바빌론 같고. 그렇지만 이카루스나 바빌론의 사람들도 몰랐겠지. 자신들이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그 모든 것을 이뤄내기 직전인 자기 자신을 더 믿었을 거야.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없었어요. 네 살인가, 다섯 살 때라서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게다가 살아남은 이들 중 어린아이는 저밖에 없었고요. 살아남긴 했지만 사실 내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때 그냥 부모랑 같이 죽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매일 밤 했어요.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죽지는 못했지만요.’


그때 네가 죽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살아갈 용기를 내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직접 목소리를 내어 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품을 내어 정우를 안아줬을 뿐이다. 에스테는 은은한 샴푸 향이 배어 나오는 머리칼에 코를 대었다가 분내 나는 그의 귓불과 뒷목덜미에 입술을 대며 조금씩 떨리고 있는 정우의 감정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무런 경계 없이 그저 누군가에게 안겨 있을 수 없는 삶에 대해서 나는 잘 안다고, 그런 삶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나는 어느새 네게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며, 에스테는 정우를 온몸으로 껴안은 채 밤을 보냈다.


또다시 주책없이 눈물이 흐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에스테에게 일그러진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그때, 에디가 통신을 켜 에스테에게 주의를 주었다. 검정 잉크 한 방울이 물 한 잔을 뒤덮듯, 정우와의 추억도 우주의 어둠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에스테는 두 손을 펴 양 볼을 찰싹 때린 뒤에 우주선 조종대에 다시 손을 올려놓았다.


“어쨌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종된 좌표계의 근방 몇 백만 킬로미터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돼. 그런데 내가 우연히 발견한 게 있어. 어쩌면 이게 실마리가 될지도 몰라.”


에디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웃음에는 감출 수 없는 불안함이 담겨 있었다. 에디의 초조해하는 눈동자가 에스테의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회사에서 공유한 정부 내부 문서에서 찾은 건데, 그 좌표에서 닫힌 시간적 곡선이 발견되었어.”


-“닫힌 시간적 곡선? 그게 무슨 뜻이야.”


에디는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는데 네가 가져온 우주선을 계속 분석해보니까, 양자… 중력이… 해서… 수도 있단 거야…”


에디의 목소리가 조금씩 끊기기 시작했다.


“에디, 통신이 불안정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안 들려.”


-“…블랙…동시에 존재하는…그러니까…조심…”


조심이라는 말을 끝으로 에디와의 통신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에디에게서 전해 온 불안이 에스테에게도 조용히 싹트기 시작했다. 수십 번이 넘는 출장을 나가며 단 한 번도 통신이 불안했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이 그렇게 데브리 회수 본부로부터 먼 곳도 아니었다. 에스테는 통신기를 두들겨보기도 하고 재부팅 해보기도 하며 다시금 교신을 시도했지만 헛수고였다. 괴괴한 정적만이 선내를 감돌았다.


에스테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때,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에스테의 귀에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펴지는 건조한 기계음이 가득 차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에스테와 그의 우주선을 삼키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우주 여객선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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