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정우는 올해로 스물다섯이었다. 누워 있는 시체의 모습은 못해도 육십 세는 훌쩍 넘겨 보였다. 에디의 단호한 말을 듣고도 에스테는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물끄러미 에스테의 눈을 바라보다 에디는 말했다.
“나도 믿을 수 없었지. 그런데 묘하게 정우의 얼굴을 이 시체에서 볼 수 있었어. 노파심에 회사에 등록된 기사들의 생체정보랑 이 시체를 대조해보기도 했어. 지문, 홍채, DNA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에스테는 가늠할 수 없었다. 실종된 지 고작 일주일 만에 정우가 이렇게 늙어버릴 수가 있을까. 우주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전까지, 저 거대한 하늘 위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날 거라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결국 우주마저 지독히도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거의 똑같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몇몇 풍경들은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아름답고 충격적이었지만 125번의 출장과 귀환을 반복하며 에스테에게 쌓인 건, 지구의 노동자가 경험할 수 있는 지루함과 초조함 그리고 흐르는 시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고독한 시간들도 결국 흘러가고 그 인내의 끝에는 삶이 있었다. 밟을 땅이 있었고 조금은 탁하지만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공기가 있었고 별다른 설명 없이 꽉 잡을 수 있는 정우의 손이 있었다. 굳은살 투성이의 돌덩이처럼 딱딱한 손이었지만 에스테의 작은 손을 전부 감싸 쥘 수 있었던 따뜻한 손. 농담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어. 감히 우주에서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 안 되는 거였어.
에스테는 누워 있는 자의 손을 바라보았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침범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크고 친절해 보이는 익숙한 다섯 마디의 손가락들. 이자를 내가 아는 정우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정우임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에디가 보여준 수치는 전부 정확했다.
“… 이제 어떡할 거야?”
에디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떡할 거냐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보통 나는 출장이 끝나면 어떻게 했지. 지구로 돌아갔지. 이번에는 좀 가벼운 발걸음일 거라 생각했어. 매번 지구로 향하는 귀환선에서 들떠 있던 정우에게, 창피하다고, 조금 진정하라고 쏘아붙이던 핀잔도 이번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던 일주일 동안 많은 계획을 세워놨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에스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땅에 떨구었다. 에디는 기름으로 더러워진 장갑을 벗고 에스테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에스테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얼마 간 생각에 잠긴 듯했다. 메슥거리던 속과 누군가 쥐어짜는 것 같았던 창자도 조금씩 괜찮아졌다. 에스테는 고개를 들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데, 정산 좀 빨리 해줘. 되도록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