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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Sep 24. 2024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02


02.


에스테가 일주일 전에, 그러니까 지구 달력으로 7월 26일에 운 좋게 회수했던 폐우주선의 잔해에서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멀쩡한 부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꼬박꼬박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할부금과 밀린 카드값의 일부를 너끈히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금액이 그 쓰레기 더미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문제는 정우가 실종됐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고작 일주일 전만 해도 그 녀석 우주선을 봤단 말이야. 안정적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어. 반가운 마음에 몇 번 헤드라이트를 깜빡거렸더니 금세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우주정거장 한 귀퉁이에 조성된 데브리 우주선의 기항지에서, 출장을 마친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스케줄이 끝난 기사들 대부분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다양한 감정들이 그들 사이에서 파도처럼 너울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정우의 실종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그런 이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제 막 정산을 끝내고 사무실에서 나온 에스테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지. 기사들 죽어나가는 게 어디 하루이틀이야? 게다가 그 선머슴같이 덩치만 큰 년이 매번 이 구역 데브리들을 싹 쓸어가니까, 우리는 제대로 된 수당도 못 받았잖아. 잘 됐지, 뭐. 눈엣가시 하나 없어졌다고 호들갑 떨 필요 없어.”


“이봐, 입 조심해. 그년 마누라 저기서 똥 씹은 표정 하고 있잖아.”


에스테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다 헛소리다. 질투와 시기로 가득 찬 이들의 열등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저런 이들은 무시하면 된다. 반응하지 않으면 관심을 거둘 것이다.


“다들 정산하기 전에 각자 쓰레기통 한 번씩 뒤져봐. 그년 시체라도 있으면 제 마누라한테나 던져주게.”


“근데 이번에 에스테 크게 한 탕 친 것 같던데. 의심스럽지 않아? 사실 그 선머슴이 실종된 것도, 에스테가 작업한 거 아니냐고. 무섭다, 무서워. 다들 마누라한테 잘 해! 호시탐탐 지 남편 등 처먹을 생각에 기회를 엿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에스테는 곧장 킬킬거리는 남성 기사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자신을 ‘마누라’라고 지칭한 기사의 멱살을 왼손으로 잡아채고는 오른손에 쥔 스패너를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향해 휘둘렀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기우뚱하며 쓰러지자 여타의 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에스테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에스테는 수없이 많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정우를 선머슴이라고, 그년이라고 말한 남자들의 관자놀이만을 집요하게 쫓았다.





경찰 조사가 끝나고 앰뷸런스가 몇몇 기사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에스테는 피떡이 된 몰골을 한 채, 한사코 의료진의 권고사항을 거절하며 오직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만을 표현했다. 저 차에 타서 깨지는 건 내 몸이나 정신뿐만이 아니라 두 달 동안 고생해서 번 돈까지 전부 깨질 것이 분명해. 에스테는 생각했다. 데브리 회수 기사들에게 적용되는 의료보험은 없으니까.


에스테는 예전에 정우가 크게 다쳤을 때를 떠올렸다. 오 년 전, 정우가 세 번째 출장을 나섰을 때였다. 아직 모든 것이 새로웠던 정우는 초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의욕이 넘쳤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혈안이었다.


‘이런 건 초반 기선제압이 중요해요, 선배. 조금 무리해서라도 인간들 기를 죽여놔야 나중에 찍소리를 못한다니까. 아, 물론 우리 에스테 선배한테 뭐라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정우는 정거장 기항지에서 자신의 포부와 계획을 큰 목소리로 떠들었고 이에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는 선배 기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개의치 않았다. 실제로 정우는 첫 출장부터 쓰레기통을 가득 채워 돌아왔다.


기사들은 각자 구한 정보들로 자유롭게 데브리를 찾아 떠나곤 한다. 때로는 서로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구역의 데브리를 회수하다 시비가 붙는 경우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우는 첫 출장 이후로 언제나 선배들의 타깃이 되곤 했다. 못된 선배들 중 몇몇은 정우가 회수 작업을 하러 가는 곳만을 졸졸 따라다니며, 집게발로 위협을 하거나 정우가 다 해체해놓은 데브리를 훔쳐 꽁무니를 빼곤 했다. 정우는 그러나 그런 악의적인 행동에 맞대응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몫을 빼앗아갔다면 다른 데서 할당량을 채우면 된다며 더 부지런히 움직이곤 했다. 에스테는 그런 정우가 한심했다. 에스테는 반드시 싸워 부당하게 빼앗긴 몫을 되찾아야만 그날 밤에 다리를 뻗고 잠을 자는 타입이었다.


정우가 다치게 된 건, 엄밀히 따지고 보면 다른 기사들의 괴롭힘 때문은 아니었다. 데브리 회수 기사들은 동료의식이 강하기에, 어떤 기사가 데브리를 회수하는 와중에 소행성을 비롯한 데브리와 부딪칠 위험이 있으면 서로 연락을 취하며 경고를 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정우는 아무래도 그들의 ‘동료’가 아니었나 보다. 궤도에 오른 작은 쓰레기 파편이 정우의 우주선 하단을 강타할 때까지 아무도 언질을 주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정말로, 아무도 정우에게 다가오는 파편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걸고넘어질 수 있는 건, 엔진에 불이 붙은 채로 궤도를 이탈해 우왕좌왕하는 정우가 보낸 구조 요청을 근방 40만 킬로미터 거리 근처에 있던 기사들 중 아무도 받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동안 매일 같이 정우의 스케줄을 달달 외워가며 그의 꽁무니만을 좇던 인간들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


추진장치가 부서진 정우는 어디론가 흘러가던 와중 이름 모를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표류하다 삼주일 만에 구출되었다. 탈수가 심한 상태였고 불안 증세까지 보이고 있었다. 진상조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정우에게는 조종 미숙을 이유로 세 번의 출장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거진 열 달 간 수입이 없는 채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정우는 쉬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보험회사는 부상과 사망 위험이 높은 데브리 회수 기사들이 자사의 보험을 드는 것에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쫓아버리곤 했으니까.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정우가 홀로 병원비와 입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정우가 에스테를 특히 따르며, 가까워지게 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에스테는 여전히 그때 자신이 왜 그의 병원비를 내주었는지 의아해했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그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출장이 끝나고 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했고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다 함께 잠들기도 했다. 출장 기간이 겹칠 때면 매일 같이 서로에게 연락을 보내곤 했다. 정우에게 이번 출장은 벌써 60번째였고 에스테에게는 125번째였다. 서로의 출장이 겹친 건 이번으로 열 번째였다.




정우, 어디에 있을까.


그저 실종일 뿐이다. 우주에서의 실종은 죽음과 동의어라는 걸 에스테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정우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정우는 강했다. 보통의 남성들보다 큰 키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비겁한 녀석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린치를 가해도 정우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나 반응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정우가 마냥 억센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정우는 눈물이 많았고 다정했다. 에스테는 언제나 정우의 곁에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살고 싶지 않아질 때마다 정우는 항상 그의 옆에 있었다. 에스테가 데브리를 회수하며 사람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기도하는 듯 짧게나마 애도의 표현을 하는 것도 정우에게 배운 것이었다.


‘그냥 하는 거예요, 선배. 나나 선배도 언제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고 슬퍼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길 바라요.’


에스테의 밝은 갈색 눈동자에 희뿌연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너는 어디에 있는 거야, 대체. 너 때문에 지금 내 몰골이 이게 뭐야. 네가 어디서 욕을 먹는 걸 듣고 내가 앞뒤 안 보고 성난 짐승처럼 달려나가는 걸 네가 봐줬어야지. 네가 내 상처를 만져줬어야지.


에스테는 꺽꺽거리며 모두가 사라진 기항지 한복판에서 울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온몸에 난 상처를 움켜쥔 채,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에스테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회수한 데브리의 값을 매기며 초과수당을 지급하는 사무실 직원인 에디였다.


“슬퍼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네가 확인해봐야 할 게 있어, 에스테.”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칼을 지닌 멕시코계 한국인인 에디는, 필터까지 타고 들어간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사무실에 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회색 점프슈트를 입은 작달막한 그가 유일하게 정우와 에스테가 일터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남성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에디는 에스테의 우주선과 분리된 쓰레기통의 해치를 열어, 이미 부품별로 분해를 마친 폐우주선의 잔해를 보여주었다. 옅은 수염으로 뒤덮인 에디의 입꼬리가 계속해서 불안한 듯 씰룩거렸다.


“왜, 뭐가 이상한데. 보고서에 올린 내용이랑 목록이 달라?”


“그게 아니고, 저길 봐봐.”


에디가 검지를 들어 가리킨 곳에는 색이 바랜 아마포에 덮인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죽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 우주선을 조종했던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에스테는 의아했다. 시체라면 하루에도 수천 개를 바라보고 분류하는 에디의 눈에 특별하게 다가왔다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우리들의 동료거나, 신원이 확인된 고위 관료자일 것이 분명했다.


에디는 절뚝이는 에스테와 보폭을 맞춰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네가 쓰레기통을 열 때부터 이상했어. 이건 우리 회사에서 지급한 보급용 우주선이야. 틀림없어. 게다가 모델도 몇 개월 전에 교체된 최신형이지. 그런데 네가 확인했듯, 반감기를 따져보면 적어도 60년 정도는 전에 파손된 우주선이란 말이야.”


에디는 의문의 시체 앞에 섰다. 에스테는 멍하니 에디와 시체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문득 창자가 뒤틀리는 것처럼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토하고 싶었다, 처음 이 폐우주선을 발견했을 때처럼. 에디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에스테는 맞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에스테는 에디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을 택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시간 여행이라도 한 우리 동료란 말이야?”


에디는 말을 멈추고 에스테를 지그시 바라보다 아마포 천을 천천히 내려 시체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귀를 덮지 않을 만큼 짧게 쳐낸 흰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한 노인이었다. 굉장히 키가 컸지만, 정우만큼은 아니었다. 정우와 비슷한 골격인 것 같았지만 거의 정우의 할머니 뻘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정우야.”


늙은이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만 벌리고 있는 에스테를 향해 에디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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