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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Sep 24. 2024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01


01.


“전우의 시체를 오늘도 넘어야죠. 그럼 또 연락할게요, 선배.”


그의 둥글넙적한 얼굴에 순진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송충이 눈썹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우는 덩치는 산만해서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다녔다. 그의 웃음을 끝으로 영상은 정지되었고 얼마 안 가 화면이 꺼졌다. 에스테는 한숨을 푹 내쉬며 조종대의 의자에 걸터 앉아 생각했다. 녀석과 연락이 끊긴 지 벌써 반나절이 넘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쯤이면 할당량을 마치고 선배들에게 먼저 퇴근하겠다며 익살스러운 메시지를 보낼 때였다.


에스테의 우주선 창문 너머로 지구와 국제우주정거장이 발하는 각양각색의 불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격렬히 타오르던 산불이 가까스로 꺼진 뒤, 절망처럼 펼쳐진 잿더미 속에서 동시에 피어난 꽃들처럼. 정우를 향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산만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언제나 넋을 잃게 된다. 하지만 속절없이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늘따라 에스테는 그에게 할당된 데브리(debris :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쓰레기 혹은 폐우주선의 잔해들)의 양을 채우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믿을만한 정보원으로부터 구매한 정보에 따르면, 이 궤도 근방은 십 년 전 우주여객선이 충돌해 승객들 전원이 사망한 곳이었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범우주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탑승했던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저가로 운영되는 우주항공사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이 안타까운 사건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아무도 이곳까지 와서 데브리 회수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꽤나 값나가는 것들을 독차지할 기회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고철덩어리 하나도 안 보이냐. S급 정보라고 해서 비싸게 산건데.”



에스테는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태평양 시간 기준으로 복귀까지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데브리 회수 일은 한번 출장을 나가면 기본으로 두 달은 우주 어딘가에서 생활하며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버텨야 한다. 기본급여는 두 달 치로 산정이 되고 거기서 초과되면 수당이 지급되는 형태다. 급여는 보험료나 세금을 빼도 꽤 괜찮은 수준이긴 했다. 그러나 복귀 이후에는 너덜너덜해진 우주선을 반드시 센터에 맡겨 점검해야만 했고 그 비용은 상당했다. 다른 분야의 우주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데브리 회수 작업은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엔진을 가동하기 때문에 과부하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데브리 회수 기사들은 고용과 동시에 지급되는 싸구려 우주선을 수리하고 개조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분의 보조엔진을 구매하는 것도 고려해야만 했다. 카드빚과 할부금에 대한 고민이 없는 데브리 회수 기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에스테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이전 출장에서 손상된 우측 날개를 수리하느라 빚이 껑충 뛴 상태였다. 수당을 더 늘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그 순간, 에스테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자신의 우주선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폐우주선 더미였다. 빠르게 굴러가는 에스테의 눈동자만큼 그의 손과 발 역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살았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우주선의 엔진이 최대보다 조금 작은 출력을 내며 빠르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폐우주선은 허리 부분이 두 동강 나 있었다. 손상되기 전의 모습을 가늠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난파된 우주여객선의 잔해로 보이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우주 여객선은 하단부에 엔진이 달려 있다고 들었다. 눈앞에 놓인 부서진 우주선에는 그 상단부에 작은 엔진이 매달려 있었다.


‘음, 어쩌면 이 잔해는….’

에스테는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으로 샛노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생각했다.


불행한 운명을 맞이한 동료가 남긴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다. 딱히 슬퍼하거나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한 달 동안 업계 종사자들 중 0.2%가 회수 작업 중 사고로 실종되거나 죽어버리니까. 얼마 안 되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데브리 회수 작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약 천만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이야기는 좀 더 무거워진다. 그 때문에 데브리 회수 조종사들 사이의 인사는 정우가 에스테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과 같았다.


‘오늘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돌아오자’고.


우주라서, 우주이기 때문에 쓰레기나 시체가 서로 모여있지 않고 떠돌아다닌다는 점에 에스테는 안도한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다며 지구를 나선 여행객들의 죽음이 슬플까, 우주 쓰레기를 치우다 미처 피하지 못한 쓰레기 더미에 부딪쳐 실종된 기사들의 죽음이 슬플까. 여행객들의 죽음이 많을까, 기사들의 죽음이 많을까. 아무래도 죽음은 평등한 쪽에 가깝긴 하려나.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두 종류의 죽음 사이에는 분명 이상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삶과 죽음이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라고 여겨지는 삶. 에스테는 생각했다. 중요한 건 그렇게 죽어나가도 인간은 여전히 많다는 거고. 그래서 요즈음엔 인간의 생명이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에스테는 두 동강이 나버려 상단의 일부만 떠돌고 있는 폐우주선의 잔해에 가까이 다가가 분석을 시작했다. 오래된 녀석이었다. 자신의 회수용 우주선에 달린 집게발을 이용해 반감기를 살펴보니, 족히 반세기도 전에 박살 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에스테는 갑작스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마주치지 않아야 할 것을 본 것만 같아 속이 메슥거렸다. 폐우주선 잔해의 수치는 분명 오십 년의 세월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디자인이나 엔진의 형태가 에스테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최근의 모델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정확히 에스테와 에스테의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들에게 지급된 소형 데브리 회수 우주선의 모습과 일치했다. 군데군데 색이 바래고 상단만 절단된 채로 남아있어, 우주선 후미에 적힌 모델명과 조종사의 이니셜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에스테 자신의 우주선과 같은 모델이었다.


시체가 조종간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에스테의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우주선의 잔해를 발견했을 때는 그와 연관된 기록이나 기억은 캐지 않는 것이 데브리 회수 기사들 사이에서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오로지 돈이 되는 고철이나 아직 멀쩡하게 쓸 수 있을 만큼 덜 손상된 엔진, 혹은 인간의 시체에 삽입된 인공 장기, 장신구 등과 같은 것을 입 다물고 모두 쓸어 담아야 했다. 죽은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만약 살았다면 나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회수 기사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었으니까.


우주에서 죽은 이상, 살아있던 모든 것들은 그저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으로 남겨질 터였다.


에스테는 집게발을 이용해 우주선 하단부에 대롱대롱 매달린 회수용 컨테이너, 일명 ‘쓰레기통’에 폐우주선의 잔해를 담기 시작했다. 굉음을 내는 집게발을 바라보다 에스테는 우주선의 메시지 수신함을 확인했다. 정우에게는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사실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 정우는 단지 소처럼 일하다가 먼저 제 우주선에서 곯아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속없고 남에게 퍼주기만 하는 스타일 같아도 정우는 성공하려는 욕심과 집념으로 가득 찬 녀석이니까. 내일이면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나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깜찍한 이모티콘을 보내며, ‘일찍 일어나는 업자가 시체 더미에서 보물을 더 빨리 캐는 법이지’ 같은 괴랄한 메시지를 보내며 킬킬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에스테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폐우주선 데브리를 모두 쓰레기통에 담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려왔다. 그는 천천히 궤도를 따라 자신의 우주선이 광활한 우주 한복판을 천천히 유영할 수 있도록 엔진의 시동을 꺼버렸다. 아주 잠깐은 괜찮을 것이다. 적어도 가시거리 안에는 에스테의 우주선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물체의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쭉 뻗고 양 손아귀를 꽉 쥔 채, 눈을 감았다. 이름도 모르는 우주선 주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고개를 돌리자 불빛이 잦아든 지구와 여전히 만발한 불꽃들로 뒤덮인 우주 정거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 언젠가, 영원히 손에 닿지도 못할 것처럼 느껴지던 별의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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