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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Sep 24. 2024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05


05.


여객선은 운행이 정지된 상태였다.


에스테는 데브리 회수 우주선을 여객선 가까이에 바싹 붙였다. 그러고는 미세한 해체 작업을 하기 위해 구비된 유영용 우주복을 입고 여객선을 향해 밖으로 나섰다. 용접기를 이용해 조종석을 강제로 열자, 수없이 많은 물품들이 여객선 바깥으로 빨려나가기 시작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시체만이 안전벨트에 걸려 있었다.


죽었다. 한참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에스테가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지 몇 초 만에 시체들은 창백해지고 얼어붙기 시작했지만 잠시 동안은 피부가 변색되지도 않았고 아직 온기가 가득했다. 이 여객선인 듯했다, 비싼 돈을 주고 구매했던 정보의 주인공이. 에스테는 의아했다. 이렇게나 커다란 철골이 다가오는데 그 어떤 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니. 회수 우주선에서 알리는 경고음도 갑작스럽게 울렸을 뿐이다. 보통은 반경 50km 안에 부딪칠 위험이 있을 때 울리곤 하는 경고음이었다.


승객들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고가 났길래, 이렇게 멀쩡한 외형을 가진 채로 운행을 멈춘 것일까. 구매한 정보에는 분명 충돌로 인한 사고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디를 돌아봐도 소행성이나 데브리와 충돌한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승객실로 이어지는 해치를 열고 들어가자 각 좌석마다 이미 산소호흡기와 간이 우주복이 승객들 머리 위에서 튀어나와 대롱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를 착용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거나 평온하게 잠에 든 것처럼 고루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중력 유지 장치가 고장 났는지, 승객들의 몸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 역시 허리께에 단단히 잠겨진 안전벨트에 의해 억지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양각색의 머리칼과 넥타이 혹은 목걸이가 잔잔한 물속에 잠긴 듯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제는 자유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손뼉를 치며 좋아할 상황이었다. 죽은 이들의 소지품은 전부 정산할 필요 없이 먼저 발견한 기사가 가질 수 있었으니까. 암시장에서 더 값비싸게 팔 수 있는 것들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이렇게 아무런 손상 없는 여객선을 해체해 차곡차곡 담아 간다면 얼마나 짭짤한 수당을 받을지 기대가 될 만했다.


맨 뒷좌석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마주치기 전까지 에스테의 기대는 이어졌다. 아이는 허공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여자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우는 것 같았다. 너덧살 쯤 되었을까. 작은 몸집, 밤하늘처럼 새까맣고 긴 머리칼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혹은 검게 타오르는 불덩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시체들 더미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가진 채 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이와 에스테뿐이었다. 에스테는 손을 뻗었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고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기 위해서. 아이의 몸에 에스테의 손이 닿기 직전, 에스테는 또다시 메슥거림을 느꼈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구토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의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처절하고 슬픈 소리였다. 에스테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구토감을 참으며 아이를 왼쪽 옆구리에 들고 달렸다. 조종석에 이르기 전에 유아용 우주복을 아이에게 입히고는 산소를 가득 채워 넣었다. 아이는 에스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에스테는 자신의 고독한 여정에 아이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조종실에 들어가자 조종석 뒤편에 사람 한두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구명정의 입구가 보였다. 에스테는 여전히 눈을 똑바로 뜬 채,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 아이를 조종실 바닥에 눕혀놓고는 구명정으로 들어가 좌표를 입력했다. 지구로. 이 아이를 지구로 보내야 해. 그렇지만 지구라고 해도 어디로? 이 아이를 좋은 사람이 거두어 줄까? 못된 놈들이 이 아이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지 않을까? 이 아이를 감히 물건처럼 사고 팔지는 않을까?


그때 에스테의 머리에 스친 인물이 있었다. 에디. 그래, 에디에게 보내야겠다. 에디에게는 미안하지만 에디는 분명 이 아이를 잘 챙겨줄 거야. 우주 정거장으로 보내자. 이 아이가 나와 같은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곳엔 고아를 챙겨줄 만한 사람들이 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자랐으니까. 괜찮을 거야. 괜찮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이런 곳에서도 혼자 살아남은 아이인걸.


구명정의 설정을 마치자 구명정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에스테는 아이를 들고 내려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공황에 빠진 아이를 향해 이야기했다.


“얘, 정신 차려. 넌 이제 살았어. 네가 언젠가 죽지 않고 내던져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미안해. 하지만 적어도 이건 명심했으면 좋겠어. 네가 살아갈 용기를 낸다면, 누군가는 너로 인해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분명 나타날 거야.”


그러자 아이가 눈을 돌려 에스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물에 젖은 동그란 눈이 에스테의 눈을 찾아 헤매다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스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이는 어쩐지 에스테를 향해 고개를 한번 수줍게 끄덕인 것 같았다. 에스테는 그에 답해 웃음을 지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에스테는 아이를 한 번 힘껏 안았다. 두툼한 우주복들 사이에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질 리 만무했지만 어쨌든 에스테는 그렇게 했다. 그러고는 구명정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이윽고 굉음을 내며 구명정이 뒤꽁무니에서 불을 뿜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에스테는 조용히 작은 구명정이 더 작아져, 후에는 엔진의 불꽃이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엔진이 멈춘 여객선의 조종실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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