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민족은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하고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민족 국가에 관한 히틀러의 광신적인 개념은 많은 다른 단어들로 이루어진 생각으로 이어졌다. 만약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히틀러가 한 그 말들은 독일인들을 세상의 지배자로 이끌 것이었다 - 독일의 지배는 히틀러가 강박관념을 가지고 이끌어 가는 주제가 되었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의 게르만적인 순수성을 지키는 것에 실패한 다는 점에 관해서 이렇게 주장했다.
즉 "정말로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독일 민족에게서 세상을 지배할 권력을 강탈하는 것이었다. 만약 독일 민족이 다른 민족들이 누리고 있는 무리의 단결성을 보유했었더라면 오늘날의 독일 국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민족 국가라는 것은 인종에 그 기반을 두어야만 하기 때문에, "독일 국가는 모든 독일인을 포용해야만 한다" - 이것이 히틀러 주장의 핵심 포인트이며, 자신이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에도 잊어버리거나 행동에 옮기지 않는 일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민족국가는 "자연의 배타성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의논해봐야 소용 없는 체제였으며 퓌러프린치프로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각이었다. 프로이센 군대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제 3제국에서 채택될 것이었다.
"모든 지도자의 권위는 아래로 내려가고 책임은 위로 올라간다."
다수결로 하는 결정이라는 것은 없다. 단지 책임질 수 있는 인재들이라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모든 이는 자신의 옆에 조언자들을 둘 것이다. 그러나 결정은 단 한 사람이 내리는 것이다. 단지 지도자 단 한 사람만이 권위를 보유할 수 있으며 명령할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의회에 나누어 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문관들은 실제로 자문을 할 것이다. 어떤 부서에서도 투표라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일을 하는 부서들이지 투표하는 기계가 아닌 것이다. 이 이론 - 절대 권위와 결합된 무조건적인 절대 책임 - 은 점차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무책임한 의회주의 속에서 말 그 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시기에 엘리트 지도자들을 키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이른바 아돌프 히틀러의 사상이라는 것이었다. 레흐 강 위의 란츠베르크 감옥에 앉아서 꽃들이 만발한 과수원을 응시하면서 이 간담이 서늘하리만큼 형편 없이 조악한 내용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혹은 이후 1925년에서 26년 사이에 베르히테스가덴의 편안한 침실의 발코니 위에서 비스듬히 뒤로 기대어 있으면서 자기가 태어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향해서 우뚝 솟은 알프스 산맥을 쳐다보면서 구상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제대로 정리된 것이 아니라 마치 급류처럼 이것저것 쏟아지면서 수다스럽게 말을 했고 이것을 믿을 수 있는 루돌프 헤스에게 받아 적도록 시켰던 것이다. 히틀러는 이때 우리가 보아 온 조잡한 기반 위에서 자신이 지을 제 3제국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실제로 현실이 되었을 때 계획 그대로 철권 통치를 할 것이었다.
히틀러가 그 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하게 되는 바로 그 날에는 그게 무엇이 되었던 의심의 여지 없이 이 땅에서 싹을 틔웠던 그 많은 천재들에게 특별하게 달성할 불타는 그 정신을 시대를 통틀어 겉보기에는 어디에서도, 그리고 무엇으로부터도 나오지 않은 것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히틀러는 이전에 결코 정치적으로 하나인 적이 없었던 선택된 민족을 통합할 것이었다. 거기다 그 인종을 정화할 것이었다. 독일인들을 강하게 만들 것이었다. 히틀러는 독일 민족을 이 지구의 군주로 만들 것이었다.
조잡한 다위니즘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새디스트적인 망상이라고 생각이 드는가? 무책임한 에고이즘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과대망상증이 아닌가 싶지 않은가? 이 모든 것들이 부분적으로 사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히틀러의 정신은 그런 것들을 더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히틀러의 정신 세계와 열정은 - 몹시 열렬하고 흥분한 두뇌를 보유한 모든 잘못된 오류 투성이의 내용들 - 은 독일인의 경험과 생각에 깊이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치즘과 제 3제국은 사실 독일 역사의 논리적인 연장선에 불과했다. 히틀러 혼자 만의 것이 아니라 뿌리 깊게 이어져 온 독일인들의 전반적인 논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