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정치를 하기로 결심하다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바덴 공 막스가 지도하는 민간 정부는, 9월 말일이 될 때까지 더 나빠지는 군사적 상황에 대해 육군 최고 사령부로부터 보고를 받지 못 했고, 종전을 요구하는 루덴도르프의 요구를 몇 주 동안이나 보류했다.
전간기에 독일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이라면 이 믿을 수 없는 전설이 얼마나 널리 독일인들에 의해 받아 들여지고 있는 지를 알아차려야만 했다. 그것의 속임수를 폭로하는 사실들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우익 진영의 독일인들은 직면하지 않으려 했다. 결코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데, 저 장본인들은 바로 "11월의 범죄자들" 이었다. - 히틀러가 국민들의 의식에 억지로 주입시켰던 표현이다. 독일 제국 육군이 군사 지도자들이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정전 협정을 비겁하고 약삭빠르게 공화 정부가 조약에 서명하도록 조작했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 군사지도자들이 주장하고, 나중에 공화 정부에게 베르사유 평화 조약을 수용하도록 줄기차게 조언했던 것인데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민주당은 1918년에 마지 못해서 정권을 인수할 것을 받아 들였고, 결국 볼셰비즘으로 이르게 되도록 위협을 받을 정도로 완전히 혼란스러운 국가를 구해야만 하게 되었지만, 이런 점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공화 정부와 사회민주당은 독일의 붕괴에는 전혀 책임이 없었다. 그점에 대한 비난은 구 질서에 기반하고 있었고, 그 구 질서는 권력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수 백만 명의 독일인들은 이 점을 인정하기 거부했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패배와 굴욕, 그리고 비참함에 대해서 희생양을 찾아야만 했다. 독일 국민들은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구 귀족정을 대체한 민주주의 정부를 설립한 자들이 "11월의 범죄자들" 이라고 쉽게 자신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인들이 잘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을 히틀러가 자주 나의 투쟁에서 지껄여 대던 대상이다. 이 점을 히틀러는 매우 잘 활용했다.
1918년 11월 10일의 저녁에 파제발크의 병원에서 목사가 떠났을 때, 히틀러에게는 "끔찍한 날들과 더 나쁜 밤들이 그 뒤를 따랐다."
"나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알았다. 오직 바보, 거짓말장이 그리고 범죄자들만이 적으로부터 자비를 구할 것을 희망할 수 있었다. 여러 날의 밤동안, 내 안에서 증오가 커져갔다. 이 협정에 책임져야 할 자들에 대한 증오가 말이다... 비참하고 타락한 범죄자들! 이 때 내가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그 사건에 대해 더욱 명백하게 파악하려고 하면 할 수록, 분개하는 감정과 수치스러움으로 인해 내 눈썹은 타들어갔다. 이 비참함에 비해 내 눈의 모든 고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서는
"내 숙명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나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제 판명된 바대로, 이것은 히틀러에게 있어서나 전 세계에게 있어서나 숙명적인 결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