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멘토들의 도움을 받다
이 별 볼 일 없는 정당에는 이 점에서 언급할 가치가 있는 회원이 두 명 있었다. 둘 다 히틀러가 부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이었다. 뮌헨의 육군 7 군구 사령부의 참모였던 에른스트 룀 대위는 히틀러보다 전에 그 정당에 가입했다. 룀은 다부지고 황소 같은 목에 돼지 같은 눈을 가졌고 얼굴에는 흉터가 있는 전문 군인이었다. - 코의 윗 부분은 1914년 총에 맞았다. - 거기에 조직가로서 천성이라고 할 능력과 정치가로서 솜씨 또한 갖추고 있었다. 히틀러처럼 룀도 민주 공화국과 그것에 책임이 있다고 자신이 보고 있는 "11월의 범죄자들"에 대해 불타는 증오를 보유하고 있었다. 룀의 목표는 강력한 민족주의 독일을 재창조하는 것이었고, 히틀러와 함께 이 임무는 룀 자기 자신과 같은 하층 계급에 기반한 정당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정규군 장교들과는 의견을 달리 했다. 거칠고, 잔인하며, 역동적인 남자 - 반면에 초창기 나치 인물들 중 많은 수가 그러했듯이 동성애자였다. - 룀은 나중에 S.A. 로 성장하게 되는 초반의 나치 무력 집단을 조지하는 것을 도왔다. 나치 돌격대는 1934년에 히틀러가 처형할 때까지 룀이 사령관을 하게 된다. 룀은 막 싹을 틔운 정당에 거대한 숫자의 전직 군인들과 자유군단 자원자들만 데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룀이 데리고 온 이들은 초기 시기에 조직의 중추를 형성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당시 바이에른을 통제하고 있는 육군의 장교로서, 룀은 히틀러와 그 정치 운동에 대해 보호를 제공했고 때때로는 당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히틀러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화국을 전복시키라고 선동하는 자신의 정치운동을 정말로 시작도 못해보고 마무리해야 했을 지도 몰랐다. 확실히 히틀러는 바이에른 정부와 경찰의 관용이 없었다면 공포와 위협을 담은 자신의 정치 기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히틀러보다 스물 한 살이 더 많았는데, 종종 국가 사회주의의 영적인 창건자로 불렸다. 재치 있는 저널리스트, 썩 좋지는 않은 시인이자 드라마 작가로 입센의 페르귄트를 번역했고 많은 수의 무대에 오르지 못한 연극 극본을 집필했다. 베를린에서 한 동안, 비엔나에서의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안적인 부랑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알콜중독자가 되었고,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으며, 그리고 하이든에 따르면 정신병동에 감금되었고, 거기서 마침내 자신의 드라마를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되었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배우로서 사용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 고향인 바이에른으로 돌아왔고 뮌헨의 예술가들의 구역인, 슈바블링의 브레네셀 와인 저장고에서 열린 추종자들의 모임에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거기서 아리아인의 우월성과 유태인의 절멸을 요구하고, 베를린의 그 "돼지새끼"가 몰락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우리는 지도자가 될 동지가 필요하다."
당시 뮌헨에서 신문기자로 일하고 있던 하이든은 에카르트가 1919년애 브레네셀의 와인 저장고에 자주 다니던 단골들에게 선언하던 내용을 언급했다.
"기관총의 소리를 버틸 수 있는 자 말이야. 왁자지껄 떠드는 폭도들은 공포에 질려 바지에 오줌을 지리고 말 걸. 그렇다고 군 장교를 지도자로 할 수는 없어. 왜냐하면 이제 아무도 장교들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야. 최고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아는 노동자야. 아주 똑똑할 필요는 없어. 총각이어야만 해. 그래야 여자들은 우리가 차지할 테니까."
저 말술을 들이키는 시인이 아돌프 히틀러의 안에서 자신이 찾는 천성을 다른 그 누구보다 적합하다고 발견했을까? 이 시인은 이후 독일 노동자 당에서 이 떠오르는 젊은이의 가까운 조언자가 되었다. 히틀러에게 책을 빌려주고 독일어를 더 향상시키도록 도왔다. - 글과 말 양쪽 모두 - 그리고 자신의 넒은 인맥을 히틀러에게 소개랬는데, 여기에는 당의 재정에 기여하고 히틀러의 생활을 해결해 줄 부유한 친구들 뿐만 아니라, 루돌프 헤스나 알프레드 로젠베르크와 같이 미래에 히틀러의 유용한 조수가 될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에크하르트에 대한 히틀러의 존경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고, 나의 투쟁의 마지막 문장은 이 별난 멘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히틀러가 책을 마무리하면서 말한 바에 따르면, 에크하르트는
"최고의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우리 민족의 각성에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 자신의 글과 생각,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업적으로 최고임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