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러의 출현 3

히틀러와 함께 나치당을 이끌 수하들이 한 명씩 등장하다

by 꿈많은 미소년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수하들의 대부분은 이제 당에 속해 있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입당할 것이었다. 루돌프 헤스는 1920년에 입당했다. 이집트에 거주하는 독일인 도매업자의 아들인 헤스는 자기 인생의 14년을 그 나라에서 보냈고, 그리고 나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 라인란트로 왔다. 전쟁 기간 동안 히틀러와 함께 리스트 연데에서 잠시간 복무했다. - 비록 그 두 사람이 군 복무 시기에는 서로 알지 못하긴 했지만 - 그리고 두 번 부상을 당한 후에 항공기 조종사가 되었다. 전쟁 후에 뮌헨 대학에 입학해서 경제학부의 학생이 되었지만 시간의 대부분은 반 유태주의 소책자를 배부하고 여러 종류의 무장한 무리들과 싸우면서 바이에른에서 이렇다할 직업 없이 백수로 빈둥거리며 보냈다.

1919년 5월 1일 뮌헨에서 소비에트 정권이 타도될 때 그 치열한 포화 속에 있었고, 사격에 맞아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일년 후 어느 날 저녁에 히틀러가 연설하는 것을 들으러 갔고, 히틀러의 언변에 감화되어 나치당에 입당했다. 곧 헤스는 히틀러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또한 헌신적인 추종자이자 지도자의 비서이기도 했다. 히틀러를 대학의 지정학 교수인 칼 하우스포퍼 장군에게 소개하고 그 지정학 지식을 얻을 수 있게 한 것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루돌프 헤스였다.

헤스는 자신이 상을 받은 에세이를 히틀러에게 보여주었고, 히틀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학위논문을 위해서 쓴 에세이로, "독일은 원래의 위치로 다시 이끌 지도자는 어떻게 구성되어져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모든 권위가 사라진 곳에서 민족의 지도자인 한 남자만이 권위를 창설할 수 있다... 독재자가 광범위한 대중들에 원천적으로 깊게 기반을 둘수록, 그 독재자는 대중을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대할 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지도자를 덜 불신하게 되고, 이러한 가장 열정적인 집단 가운데 지도자가 더 많은 지지자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 자신은 대중과 아무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위대한 남자와 마찬가지로 지도자는 어떠한 종류의 사람도 될 수 있다... 그것이 필요한 순간에는 지도자는 유혈이 낭자한 참사의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다. 위대한 문제들은 항상 피와 강철로만 결정된다... 자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 지도자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밟아 뭉갤 준비가 되어있다... 입법자는 끔찍하게도 힘들게 지속해 나간다... 필요성이 대두하게 됨에 따라서 지도자는 그들을 [민중을] 척탄병의 군화발 아래 두고 밟아 뭉갤 수 있다...



이 젊은이에게 히틀러가 끌린 것은 당연했다. 이 에세이에서 제시한 것은 그 시점에서 히틀러가 지도자로서 가진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후에 되기를 원했던 - 그리고 실제로 되었던 지도자 상을 그려낸 초상화였던 것이다. 자신이 지닌 모든 학구적이고 침울한 성품 탓에, 헤스는 지성이 제한적이고, 항상 괴상한 생각들만 받아들이며, 그런 생각들을 대단히 광신적인 자세로 체택하는 그런 종류의 남자로 계속 남았다. 거의 종말의 시기 이전까지 헤스는 히틀러의 가장 충성스럽고 신뢰 받는 추종자들 중 한 명이자, 개인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숙청되지 않은 소수의 인물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비록 나치당의 "지성적인 지도자"로서 그리고 실제로 "철학자"였다는 점에서 종종 지성인으로 묘사되기는 하지만, 아니나다를까 나치당의 다른 인물들처럼 그 지적 수준이 보잘 것 없는 인간들 중 하나였다. 로젠베르크는 어느 정도 진실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분명 러시아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러시아의 많은 "지성인들"의 경우처럼, 발틱 게르만 족의 후손 중 한 명이었다.

구두 제조공의 아들러서 에스토니아의 레발 (지금은 탈린이다) 에서 1893년 1월 12일에 태어났다. 당시 그곳은 1721년 이래로 러시아 제국의 한 부분이었다. 로젠베르크는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에서 공부하기를 선택했고 1917년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건축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로젠베르크는 볼셰비키 혁명이 진행되는 기간동안 모스크바에서 살았고, 이후에 나치 당 안의 정적들이 말했듯이, 젊은 볼셰비키 혁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장난삼아 해본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1918년 2월에 로젠베르크는 레발에 돌아와서 독일군에 복무하기 위해 자원했고, 그 무렵 독일군은 도시에 다다랐는데, 이 젊은이의 자원을 "러시아인"의 신청으로 보고 거절했다. 1918년이 끝날 무렵에는 뮌헨으로 길을 떠났고, 거기서 러시아 백군 망명자 모임에서 처음 활동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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