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은행나무가 사라진다면

by 벽허

청명하게 타오르는 생명을 품은 샛노랑을 몰랐을 것이다.

레몬이나 바나나랑 견줄 수 없이 압도적으로 비비드 한 옐로우

거리 바닥에서부터 3층 높이의 시야까지 아이맥스 옐로우

파란 하늘과 은행 잎의 경계가 마치 황금 백사장과 바다의 풍경을 뒤집어 놓은 듯하다

냄새나는 열매를 무자비하게 떨구어 미안하다는 듯 마구잡이로 흩날려 쌓이는 여름을 닮은 가을의 전령들

일부에겐 골칫거리, 다수에겐 무관심한 순환, 또 다른 일부에겐 다시 찾아온 낭만

바스락바스락, 소리로 걷는 와중

김춘수의 꽃 같은 잎 하나를 들어 책갈피로 쓴다

오랜만에 책갈피에 어울리는 책을 고르고 싶은 생각

색이 바래고, 말라가고, 바스러질 때까지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면 추억하고 그리워해야지

미래와 과거와 현재의 가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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