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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버섯 오천 원, 콩나물이 육천 원

by 여름온기

“멕시코에 한번 놀러 와. 비행기값만 내고 오면,

우리 집에서 생활비 걱정 없이 같이 놀자.”


“언니, 내가 남편한테 말했더니, 비행기 값이 더 들겠대.”

“잉? 아니야. 멕시코 물가 엄청 비싸.”


그땐 웃었지만, 이곳의 물가는 농담이 아니었다.




쇼핑카트를 잡는 순간 몰려오는 건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먼저 온다.

비싼 물가 앞에서 현명한 소비자는 '안 사는 게 잘하는 걸까, 필요한 걸 사는 게 잘하는 걸까.'

여전히 헷갈린다.


HEB에서 3일 치 식재료가 1000페소(약 7만 원).

코스트코에서 생수병만 매달 1500페소(약 10만 원).


한식당 된장찌개가 1만 4천 원, 돼지갈비는 2인분에 4만 2천 원.

한국에서 온 가시 바른 갈치 다섯 개입이 약 5만 원.

팽이버섯은 5천 원, 콩나물은 6천 원.


그 가격에 내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살까, 말까. 먹을까, 말까.'


그래도 한식을 먹어야 또 하루를 버틸 수 있기에, 발걸음은 매번 한인마트로 향한다.


노란 콩 사이로 시커먼 콩이 섞인, 줄기 끝이 갈색으로 바랜 콩나물 봉지를 들었다가 내려놓고,

팽이버섯 앞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며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한참을 냉장고 앞에서 서성였다.


“사장님, 콩나물 상태가 안 좋은데, 최근에 들어온 건 없나요?”

“네. 이게 다예요. 여기 멕시코에서 직접 키우는 거라, 한국처럼 상태가 좋을 수는 없어요.

땅도 뜨겁고, 물도 뜨겁거든요.”


그 말을 듣으니 내 속도 바르르 끓어올랐다.


그날,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아 보이는 팽이버섯이 딱 두 개 남아 있었다. 비싼 만큼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

나는 괜히 그 앞에서 눈을 피했다.

그러다 결국 두 개를 허겁지겁 사서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군침은 밑동을 자르자마자 사라졌다. 검게 변색된 속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얼굴이 괜히 악덕하게 느껴지고, 새침해 보였던 팽이버섯도 처량해 보였다.

손에 움켜쥔 팽이버섯을 놓아주기 싫어 한참 바라보다 마지못해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렇게 어렵게 산 식재료들은 하나하나 귀했다.

채소를 씻다 흘린 한두 가닥도 아까워 재빨리 주워 담았다.


미국을 거쳐 오기 때문에 가격은 배로 뛰지만, 그래도 이곳에 한인마트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요즘은 혼자 하는 식사가 조금 버겁다.

‘우걱우걱’ 삼키는 대신, 명상 오디오를 틀었다.

'하루 한입 명상'


「이 음식의 재료는 자연에서 태어났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내 앞에 놓였습니다.

온 우주가 협력한 결과물인 이 음식에서, 내 몸은 에너지를 얻고 살아갑니다.」


그 문장을 듣는 순간, 숟가락을 들던 손이 잠시 멈췄다.

내가 먹는 음식, 내 식탁을 위해 닿았을 수많은 손길들을 떠올렸다.


흰쌀밥의 온기가 입 안을 두드리고,

나물반찬의 간장과 마늘향이 코끝을 스쳤다.

과일의 새콤달콤함이 퍼지며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비싸고 품질이 아쉬운 식재료가 이상하게도 고맙게 느껴졌다.

불평하면 끝이 없지만,

그래도 오늘 식탁에 밥이 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감사하다.

그리고 천천히,

오늘도 감사의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식탁 위 감사함이 머무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고요했던 마음에 다시 작은 파문이 일었다.


쓰레기통, 청소솔, 물티슈 같은 공산품들의 터무니없는 가격표를 보니,

다시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한국에 있는 그리운 장소 하나가 떠올랐다.


다. 이. 소


마음의 평화도, 거기선 천 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멕시코로 와주면 안 되겠니.


다시 명상 오디오를 켜야겠다.

잠깐 흔들린 마음의 여유와 잊고 있던 행복을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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