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나라를 세 개쯤 구했는지 나는 15년째 주말 부부다. 그중 단 2년, 남편이 집 가까운 임지로 발령받아 같이 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혼자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직장까지 다니는 것이 힘들어 속으로 이발 저 발 욕지거리가 나오는 날도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은 주부들에 비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지 않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게다가 큰아이는 일찌감치 고등하고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고 현재는 군에서 생활하고 있다. 작은 아이와 나는 식성이 전혀 맞지 않아 문제가 생길 법도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아들은 고기면 된다. 고기로 만든 요리하나면 군말 없이 밥 한 그릇을 똑딱 비운다. 고기가 지겨울 쯤엔 배달앱을 열고 본인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문한다. 참 편한 아이다. 나는 철저하게 시골 입맛에 다이어트를 핑계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한다. 손이 가는 음식이 거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대형바트에서 장 볼 일이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마트며 재래시장까지 다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대량의 식재료가 필요하지 않아 쿠*과 배*민 마트의 우수고객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남편이 오는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도록 주문하면 세상 편하게도 집 앞에 친절히 배송된다. 집에 들어오면 한 발짝도 나가기 싫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시스템이 되었다. 갑자기 필요한 생필품이나 과일 등은 주문과 동시에 바구니에 담아져 두어 시간 안에 받아 볼 수 있는 배*마트는 새로운 쇼핑 강자로 자림매김 중이다.
이런 편리한 시스템 덕에 나는 저녁을 철저하게 게으른 내 시간으로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간단한 집안일, 사우나, 운동, 그림 그리기, 글 쓰기. 책 읽기. 팔자 좋은 인생이다.
며칠 전 스레드에서 알게 된 친구 한 명이 전통시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글로 적었다. 시골 통닭을 사고 반찬 가게에 들러 식구들이 좋아하는 반찬들을 구매했다고 한다. 그리고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장바구니 가득 담고 오는 마음이 그리도 행복했단다. 그 친구는 글 말미에 요즘 장보기 어플과 대형 마트로 사람들이 몰려 재래시장 상인들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다. 듣고 보니 대통령도 후보시절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지역 구석구석을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 지갑 속에는 받은 지 5개월이 넘는 온누리 상품권이 그대로 들었다. 집 주변에 마땅히 쓸 곳이 없다는 핑계로 한동안 잊고 있었다.
일신의 편안함과 상생이라는 문제 안에서 갈등이 생겼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꾸고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생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힘들어하는 영세 상인들의 입장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어야 한다는 작은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는 더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 오늘 퇴근길에는 좀 멀더라도 시장에 들러 아들이 좋아하는 족발과 과일을 사 와야겠다. 나간 김에 콧바람도 쏘이고 줄 서서 먹는다는 씨앗 호떡도 맛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