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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결

작은 전시회

by 정말빛

매주 목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무기력이란 녀석이 나를 막을 수 없는 시간이다. 화실로 가는 내 발걸음은 언제나 기대에 차 있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


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매우 즉흥적이고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되었다. 아들이 재수하던 시절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했다. 문득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아무 준비물도 없이 몸만 가면 된다는 광고 문구를 발견하고 그 길로 화실로 향했다. 그것이 시작이다. 나는 어린 시절 그림을 무척 못 그리던 아이였다. 방학숙제로 제출한 그림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었다. 그 사건은 내 기억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그린다는 행위자체가 두려움과 부끄러운 감정을 일으켰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연필을 잡고 낯선 재료들로 그림 그리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펜으로 그림 한 장을 그리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들이 그리는 멋진 그림들이 부러웠고,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욕심이 생겼다.


아들의 재수가 끝나고 더 이상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을 때 지금의 화실 밈을 만났다. 작은 규모의 화실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낯선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림에 몰두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반했고 나도 그 일부가 되었다. 소규모의 인원들이었기에 그림을 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오래 만난 친구처럼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즐거웠다. 절대 늘지 않을 것 같은 내 실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에 나를 칭찬했고 그 마음이 밑거름이 되어 더 큰 작품에 도전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작년 전시회에 작품 한 점을 출품하고는 화가라도 된 냥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감사와 행복으로 충만했다.


한 동안 책을 쓰느라 정신없이 바빠 화실에 나가지 못했다.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에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손을 다시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따뜻함에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부재한 시간 동안 작업실 친구들의 그림은 한층 더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전시회 소식을 접했다. 완성된 작품 한 점 없던 나는 참여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주변의 격려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작품 두 점을 완성했다. 그리고 화실을 나가는 일은 다시 내 생활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하는 일이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주변의 도움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도전이란 말 뒤에 감추어진 진정한 의미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더 많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작은 성취감이라도 얻을 수 없는 일에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 비록 느리고 더딜지라도 노력과 시간은 나에게 희망이란 선물을 줄 것이다. 함께 할 친구나 멘토가 있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책 읽기와 글 쓰기, 그림 그리기라는 소소한 취미들이 있고, 아이들을 위해 작은 일이나마 봉사하고 지내려 한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들은 내 인생의 색을 겹겹이 쌓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내 인생이라는 그림에 색의 결을 만들 것이다. 여러분을 작은 전시회에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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