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전시회
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매우 즉흥적이고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되었다. 아들이 재수하던 시절 기다림의 시간이 지루했다. 문득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아무 준비물도 없이 몸만 가면 된다는 광고 문구를 발견하고 그 길로 화실로 향했다. 그것이 시작이다. 나는 어린 시절 그림을 무척 못 그리던 아이였다. 방학숙제로 제출한 그림을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갈기갈기 찢었다. 그 사건은 내 기억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그린다는 행위자체가 두려움과 부끄러운 감정을 일으켰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연필을 잡고 낯선 재료들로 그림 그리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펜으로 그림 한 장을 그리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들이 그리는 멋진 그림들이 부러웠고,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욕심이 생겼다.
아들의 재수가 끝나고 더 이상 먼 곳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을 때 지금의 화실 밈을 만났다. 작은 규모의 화실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낯선 사람들이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림에 몰두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반했고 나도 그 일부가 되었다. 소규모의 인원들이었기에 그림을 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오래 만난 친구처럼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즐거웠다. 절대 늘지 않을 것 같은 내 실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느껴지는 성취감에 나를 칭찬했고 그 마음이 밑거름이 되어 더 큰 작품에 도전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작년 전시회에 작품 한 점을 출품하고는 화가라도 된 냥 마음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감사와 행복으로 충만했다.
한 동안 책을 쓰느라 정신없이 바빠 화실에 나가지 못했다.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에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손을 다시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어제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맞아주는 따뜻함에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내가 부재한 시간 동안 작업실 친구들의 그림은 한층 더 발전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전시회 소식을 접했다. 완성된 작품 한 점 없던 나는 참여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주변의 격려와 선생님의 도움으로 작품 두 점을 완성했다. 그리고 화실을 나가는 일은 다시 내 생활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하는 일이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 주변의 도움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마음. 도전이란 말 뒤에 감추어진 진정한 의미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더 많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좌절하기보다는 작은 성취감이라도 얻을 수 없는 일에 도전해 보기를 바란다. 비록 느리고 더딜지라도 노력과 시간은 나에게 희망이란 선물을 줄 것이다. 함께 할 친구나 멘토가 있다면 더없이 감사한 일이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책 읽기와 글 쓰기, 그림 그리기라는 소소한 취미들이 있고, 아이들을 위해 작은 일이나마 봉사하고 지내려 한다.
지금 내가 보내는 시간들은 내 인생의 색을 겹겹이 쌓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내 인생이라는 그림에 색의 결을 만들 것이다. 여러분을 작은 전시회에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