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제3의 장소이자 사람들, 물푸레북카페
지난 포스팅에서 우리동네 제3의 장소를 발견했다고까지 얘기했다.
(출처:가을님)
그리고서 벌써 두달이 지났는가.
첫 포스팅 이후 나는 매주 물푸레에 방문해서 시간을 때우다가
5월부터는 물푸레에서 하는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를 해볼까 생각만 한지가 일이년인데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직 더 알아갈 것이 많겠지만
요가를 하면서 본 물푸레는
혼자 가서 커피 한잔하던 물푸레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5월의 재즈싱잉 행사 때 가서 본 물푸레는 또 다른 모습이고.
관계가 쌓이고 시간이 쌓일 수록
물푸레의 더 많은 면면을 볼 수 있겠지. 어디서나 그렇듯.
제3의 장소를 쓴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장소의 특징을 여덟가지,
개인적인 이점을 또 여덟가지로 정리한다.
이 특징과 이점을 활용해서(푸른 표시)
내가 만났던 물푸레의 세 가지 면을 중심으로
제3의 장소로서의 물푸레를 설명해보려 한다.
첫째, 카페와 서재로 만난 물푸레,
누구에게나 열린 중립지대이자 수평지대
물푸레 서재(왼쪽)과 카페(오른쪽) (출처:가을님)
물푸레는 기본적으로 카페와 서재로 구성된다.
카페에서 공정무역커피와 두레생협/한살림 차라는 화려한 라인업을 예상보다 저렴하게 즐긴다거나,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하는 외에도 물푸레에는 할 것이 많다. 카페에서 보드게임을 대여해 즐길 수도, 만화책을 볼수도, 제로웨이스트물품을 살수도, 프린트를 할수도, 옷수선을 맡길수도, 각종 모임들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 공간은 중립지대이자 수평지대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코로나로 멈췄지만 예전에는 행사를 더 많이 했다.
일년에 두어번씩 벼룩시장을 마련해, 더 많은 이들이 어울리는 장을 만드는 노력을 해오기도 했다고.
그리고 특히, 물푸레에는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들도 자유롭게 한켠을 차고 앉아 서로 노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이는 물푸레 공간 자체가 아이들을 키우던 엄마들의 손에 탄생했던 점과 연관이 될거다.
물푸레의 시작을 거슬러올라가보자.
물푸레의 기원, 숲동이놀이터 (출처:내손안의 서울)
2009년, 생태보전시민모임이라는 은평구 시민단체의 회원이었던 네 명의 엄마가 육아 고민을 나누다가 아이들에게 자연 감수성을 키워주자며 자체적으로 숲동이 놀이터를 만들었다. 아이들과 엄마아빠가 은평구의 산과 숲에서 주3회씩 함께 노는 생태육아모임이다. 숲동이놀이터가 쭈욱 이어지던 2012년,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현재 물푸레 공간을 민간위탁을 냈단다. 거기에 숲동이놀이터를 하던 엄마 21명이 뭔가 해보자며 지원을 해서, 처음에는 "은평뉴타운 여성행복 카페"로 출발했다고.
초기 물푸레 모습, 여성행복 북카페(출처:내손안에서울)
그렇게 세워진지 십년이 흘러 현재 물푸레북카페 활동가는 네 분, 북카페 관련 중요한 결정을 하는 운영위원들은 십여분, 처음에는 북카페와 에코상상교육단으로 나눠졌던 공간은 이제 카페와 서재로 되는 등 차근차근 탈바꿈해왔다. 그렇지만 아이친화적이라든지, 생태를 생각한다든지 하는 중심 가치는 외양이 변해오는 과정에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고, 이는 '돈을 좀 덜 벌고 생활수준을 좀 낮추는 대신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을 얻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쁨을 느끼고, 이웃과 관계를 회복하고 이로써 생겨나는 마을공동체 문화를 누리는’(말로님_'내손안의서울' 인터뷰에서) 숲동이놀이터의 가치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생태적 가치는 계속 이어진다. 작년 9월에는 카페 한켠에 제로웨이스트 샵을 열었다.
제3의장소의 특징 중 하나가 '소박한 외관'이다. 레이 올든버그는 이를
'뜨내기 손님을 걸러내는 보호색'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물푸레의 외관을 소박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화려하진 않지만, 세련되고 정성스럽다. 다만 뜨내기 손님이 많지는 않을듯한데, 기본적으로 물푸레 위치가 약간 외져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지나치기 쉬울 것이다.
한갓진 아파트단지 사이 도로, 요 간판을 보고 쏙 들어가야한다그러나 이곳을 아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언제든지 거리낌없이 이런저런 것들을 하러 올 수 있는 접근성 좋은, 단골 되기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물푸레에서 긴밀히 활동하는 재즈싱어 말로님은 예전 인터뷰에서 물푸레북카페를 "두번째 집"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혼자서 물푸레에서 커피 한 잔을 하고 앉아있노라면 카페를 지키는 활동가들에 친근하게 인사하며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아이스라떼, 바닐라시럽추가는 무료라는 놀라운 사실
둘째, 요가강습으로 만난 물푸레,
대화로 친구를 사귀어가는 장
5월부터 매주 화목 9시, 물푸레 서재에서 요가를 했다.
나마스떼가 절로 나오는 멋진 공간.
(출처:은평구 평생학습관 블로그)
원래는 이런 공간 (출처:가을님)
원래 배치되어있던 테이블과 의자들을 치워 요가 공간을 마련하는건 누가 오든 먼저 온 얼리버드들이,
요가가 끝나고는 순식간에 다같이 정리한다.
요가 정원은 8명인데,
내가 제일 멀리 살구(자전거로 20-25분)
참여자 대부분은 물푸레서 도보 5분 내에 사는 이웃들이고
모두들 초등학교 고학년 같은 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시다.
한날은 한 선생님 생일이라고 요가선생님이 물푸레에서 커피를 쏘셔서 끼어앉아 먹는데 서로 아이들까지 다 아는 사이들이라 이야기가 끝이 없다.
"코로나인데도 애들이 같이 놀 수 있고 좋네요."
"이 동네 애들은 그래요.
학교도 학원도, 생활반경이 워낙 겹쳐서 이제 이 정도는 걸려도 다 같이 걸리는거다 그러고 있어요."
자녀들 나잇대도 생활반경도 비슷하니 관심사가 비슷해 이렇게 학부모들끼리 노는게 재밌으시단다. 이야기 중에 내가 홍동 마을 답사 다녀온 이야기를 하려는데, 홍동 마을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이게 마을이고, 공동체같이, 사람들이 어울려서, 이런저런 단어를 헤매고 있으려니 한 선생님이 묻는다.
"여기 물푸레같은데 말이죠?"
물푸레에서는 요가 말고도 여러 소모임이 진행된다. 신흥도시로 문화공간이 없어 뭔가를 배우려면 멀리 나가야했던 은평뉴타운에서, 물푸레 활동가들은 공간도 있겠다 선생님들을 모셔와서 강좌를 열어보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외부 강사들은 어쨌든 수업이 끝나면 마을을 떠나는 것, 점점 마을 안에 있는 분들에게 수업을 부탁하게 된다. 또. 처음에는 강좌식으로 진행했던 모임들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소모임 형태로 진행하게 됐단다. 활동가가 강사를 섭외하고 수강생을 모집하는 전과정을 담당하기 너무 벅찼기에, 강사가 모임을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식으로 만든 것. 이렇게 진행하니 주민들이 주체로 자발적으로 만드는 소모임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단다. 동네에 부족한 교육과 문화를 채우는,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결사의 조직이고 광의에서의 정치적인 역할이고, 이런 것이 지역사회의 한 축이 되어나가는 거겠지.
이렇게 소모임에 참여하게 되면, 레이 올든버그가 제3의 장소의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꼽았던 '대화'가 일어나기 좋다. 자연스럽게 균형감각을 키우게 하는 이런저런 대화로 관계가 이어지면, 우리 요가모임에서처럼 무리의 친구들이,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된다.
셋째, 재즈싱잉 발표회로 만난 물푸레,
익숙한 동네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활력의 장
한 날은 요가 끝나고 카페에 들러 대나무칫솔을 사는데
물푸레 활동가 가을님이 조만간 재즈 발표회를 한다고 보러오라고 하셨다.
"오, 포스터도 이쁜데요?"
"아, 우리 대표님이 디자인 전공자셔서요."
(물푸레 공간이 이쁜건 다 이유가 있뜸.
게다가 사람들이 집에 있는 이쁜 거 다 들고 오신다고ㅎㅎ)
그래서 5월의 한 토요일 오후, 재즈싱잉 발표회에 가봤다.
재즈싱잉은 물푸레에 있는 여러 개 소모임 중 하나로, 이 동네 사시는 재즈싱어 말로님이 이끌어온지 햇수로 8년. 매년 강습생들과 발표회를 여는데, 코로나로 멈췄다가 이번에 재개를 해서 이번이 7번째 발표회.
시간에 거의 맞춰 갔더니 이미 사람이 남녀노소 많다. 초등학생도 중고생도 있는 것 같다. 옆에 앉은 아이 엄마가 앞에 앉은 아이에게 "안녕, 너 애기 때 봤던 형이야"라고 대신 속삭인다.
첫 공연에는 물푸레 창립멤버 아드님인 이마린군이 나와 피아노를 멋드러지게 쳤다. 올해 고3. 발표회에는 "초등학생부터 참여하면서 박수도 열심히" 쳤었는데, 이번에 "좋은 경험에 보답할수있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힌, 이마린군이 퇴장할때도 관객석에서도 서서도 둘러싸 힘찬 박수 쳐주던 사람들.
재즈싱잉 강습생 중 첫 공연자는 스카프를 우아하고 꼼꼼히 맨 단아한 분이었다. 떨리는 가성과 긴장한 제스처에 나는 왜 그리 감동했나. 그분의 노래에서 나는 그분이 이런무대가 익숙치 않은 분임을 짐작하면서, 그전에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어떻게 재즈싱잉을 배우고 이렇게 무대에까지 서게 됐을까를 슬쩍 상상하면서, 아마도 이분의 첫 무대를, 함께 해주며 호응해주는 사람들, 그런것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져서. 엄마이자 아줌마이자 딸이자 직장인이나 주부였을 한 사람이 재즈싱어가 된 이 공간이 마법같아서.
그렇게 혼자 눈물찔끔하고 그리고는,
박수를 치며 리듬을 타며 오랜만에 너무 즐겼다.
재즈는 꽤 좋아했는데 한국사람이 부르는 재즈라니, 게다가 이게 동네에서 길러진 실력이라니.
퇴장도 멋졌다. 따로 대기실이 있는 무대가 아니라 공연자는 퇴장을 객석으로 한다. 관객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공연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공연자가 된다. 최선을 다한 공연자들이, 자신을 뜨겁게 바라보고 박수쳐준 관객들 틈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모습이 좋았다.
자리가 없어 공연을 서서 지켜보는 사람들(왼쪽) 그 사람들속으로 퇴장하는 공연자(오른쪽)
이번에 알게 된 은평의 재즈싱잉고수 조현주님은 노래하기 전에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3년만의 공연이라, 잘하고 싶은데 잘하려고 하면 부족함이 많이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부족함이 드러나는 순간에 뜨거운 응원으로 여러분이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의 도전은,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빈 곳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믿음과 관계가 있기에, 사람들은 계속 새로움을, 활력을, 만들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시도와 소통과 표현과 경청에, 공공을 대체하는 시민사회의 맹아가 있을 것이다.
공연자들을 찍어주는 사람들 한아름
공연이 끝나고 뒷정리는 공연자도 관객도 함께했다
물푸레 북카페에는
가치를 간직한 사람들이 모여,
소모임과 행사 등등 소통을 통해서 더 넓게 놀며 연결된다.
이 물푸레라는 제3의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간은 사람이다.
물푸레 활동가 가을님은 은평생활문화웹진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사람과 공간은 사실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공간은 사람이 머물러야 빛이" 난다고.
"가장 중요한 건 공간지킴이가 마음을 열고, 방문자도 마음을 열어야"하는 거라고.
그렇게 만들어진
누구에게나 열린 중립지대이자 수평지대,
대화로 친구를 사귀어가는 장,
익숙한 동네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활력의 장,
우리 동네 제 3의 장소이자
사람들.
물푸레북카페.
참고사이트
물푸레 인스타
물푸레 다음카페
생태보전시민모임 홈페이지, 홈 > 협력조직 > 숲동이놀이터
서울마을이야기] '물푸레' 사람들이 사는 법
2021 은평생활문화웹진 <요모조모> 1호 인터뷰 ① 물푸레 북카페 활동가 가을|작성자 은평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