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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맛있어 Oct 20. 2024

담담하고도 단단한 모습으로 젊음을 거부했다.

10월의 산문집, 세번째 이야기

사람은 가끔 답을 뻔히 알고도 상대에게 짖게 질문을 던지는 때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유독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어떤 맥락에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사회과목 선생님께 문득 그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선생님이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어요?"


나는 답을 뻔히 예상했다. 당연히 돌아가고 싶을거라고. 나는 답을 알고도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풍토에서는 젊음을 찬미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선생님의 대답도 흐름을 크게 벗어날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젊은 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는 다시 그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 반복할 자신도 없고"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난, 짧고 굵은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그땐 그 말이 정말 놀라웠지만, 동시에 '선생님이 정말 노력하셨구나, 저렇게까지 노력하면 젊은 시절로도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딱 그 정도로 생각했다. 그 말이 훗날 내 미래에 내가 밥먹듯 뱉게 될 말이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3년 후, 나는 21살로 아주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시절로의 회귀를 극구 거부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당당하게 자신의 젊음을 자랑하듯 질문을 던지던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선생님께서 하신 답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마치 자신의 젊음을 자랑하듯 질문을 던진 제자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현실을 전한 그 선생님의 마음을 그때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 현실이 되고 나니, 왜 그때 선생님은 그렇게 담담하고도 단단한 모습으로 젊을을 거부했는지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문득 사회를 살아가기엔 내가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이 아픔을 겪고도 일어날 자신이 없다고, 아니 그냥 다시 겪고 싶지도 않다고. 그래서 그냥 내 존재를 부정해버리고 싶은 날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아직 별다른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플 때 아파하고, 회복되면 조금씩 잊는다.


나도 아직 이 젊음이 싫다. 나는 아직 지나오지 못했으니까.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으니까.


근데 언젠가 나도 그 선생님처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자신의 젊음을 자랑하듯 질문을 던지는 어린 영혼에게, 한번이면 충분하다며 지나온 젊음을 담담히 거부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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