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언제라도 아주 따듯하게
10월의 산문, 네번째 이야기
내가 젊은 시절 가장 좋아했던 철학가 중 한명인 에리히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말하자면 그는 어머니다운, 그리고 아버지다운 양심을 갖게되어야 한다. 어머니다운 양심은 '어떠한 악행이나 범죄도 너에 대한 나의 사랑, 너의 삶과 행복에 대한 나의 소망을 빼앗지는 못한다'고 말하고, 아버지다운 양심은 '네가 잘못을 저지르면 너는 네 잘못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고 내 마음에 들고 싶다면 너는 너의 생활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2024년 10월의 어느 날, 타지에서의 첫 회사생활에 적응해 안정되어갈때쯤 거리를 걷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되어야한다... 우리 부모님을 떠올리면,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프롬이 말한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같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위해 노력하셨겠지만, 그 방법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였다. 때로는 어린 나와 오빠에게 참을 수 없이 분노하고, 때로는 어린 우리에게 가족이 해체될거란 불안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럼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할까, 나를 보듬어주고 사랑해주며 이해해주고, 동시에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알려주는 존재, 나 스스로가 존재 자체로 의미있음을 알려주는 그런 존재. 그런 존재라면 내 주변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아껴두도록 하겠다.
이후로 나는 고민되는 순간이 오거나 스스로 갈등하는 상황에 처할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렸다. 그라면 내게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 어떤 말투와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다. 내 뒤에 든든한 성벽이 무서운 괴물로부터 나를 감싸주는 것처럼, 때로는 그 무서운 괴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이어 갈등의 상황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있었고 자연스레 자책도 줄일 수 있었다.
프롬이 말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는 것, 그 사람이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 그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줬다는 것. 이는 어쩌면 인생에서 단 한번조차 만나기 힘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소중했고, 따듯했고, 아쉬웠다.)
살면서 한번, 그사람이 나의 삶을 더 나은 삶으로 만들어준 것처럼, 혼자 견디기 힘든 삶을 곁에서 같이 버텨주며 희망을 불어줬던 그 사람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말이다. 어쩌면 그 기회는 이미 왔다 가버렸을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금 내 곁에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언제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그를 생각하며 열린 마음으로 삶을 지속할 것이다. 그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그 언제라도 아주 따듯하게 말이다.
2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