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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by 자유인

아들 소속팀의 친선경기가 있어서

4년 만에 야구장에 갔다


날씨도 좋고 컨디션도 괜찮아서

유치원의 재롱잔치에 가던 젊은 시절의

순수한 설레임을 안고서 소풍을 가는 기분으로

1시간을 달려서 진해구장으로 갔다

야구장은 늘 춥기 때문에 롱패딩으로

중무장을 하고 물과 초콜릿을 챙겼다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반복해서 들으며

햇살이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다


예전에는 우리 팀이 이기고

내 아이가 출전을 해서 안타나 홈런을 치거나

승리 투수가 되는 날만 신이 났다

하지만

4년 전 심정지를 겪은 이후에

3번의 수술까지 하고 나니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운드에 서있는 투수의 모든 동작이 아름다웠다

만루 상황에서 그가 숨 고르기를 하는

몇 초의 침묵조차 아름다웠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해 스윙을 하는

타자들의 모든 동작이 아름다웠고

방망이가 공을 치는 소리와

공이 허공을 가르며 그리는 포물선이 아름다웠다


포수가 장비를 차고서 무겁게 걷고 엉거주춤 앉고

공을 받고 던지는 모든 동작이 아름다웠다


강인하고 날렵하게 용수철처럼 튕기듯 움직이는

선수들의 모든 동작이 새처럼 나비처럼 아름답고

그들의 찬란하게 빛나는 에너지에 눈이 부셨다


경기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과 코칭 스텝들과 심판들이

모두 운동장에 나와서 서로 인사를 할 때는

늘 약간의 감격을 느낀다

승패를 떠나서

무사히 경기를 마친 것을 서로에게 축하하고

또 서로를 격려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가끔 생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들 덕분에 야구와 인연이 된

지난 1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순간을

조금 더 즐기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웠다

경쟁에 심리적으로 내몰리는 대신

과정을 조금 더 즐겼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인생도 그러하다

성공과 성과에 대한 집착대신

그 모든 순간과 과정을 즐길 수 있으면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선수들이 끝없이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는 것처럼

반복되는 생의 크고 작은 상실에

너무 많이 흔들리지 않고

내 인생의 재활기간을 묵묵하게 잘 버티는

사람으로 나머지 삶을 가볍고 즐겁게 살고 싶다


소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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