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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pr 11. 2024

20. 비극 역시 초대받은 축복이라

이백, <봄날 밤의 연회> 감상

오늘 감상할 작품은 이백李白의 <봄날 밤의 연회>다.



작품 해제



모든 것은 이름이 중요하다. 특히 중국의 고전문학작품은 제목만 잘 읽어봐도 글의 성격과 내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글의 원제는 <춘야연도리원서 春夜宴桃李園序>. 7글자의 제목으로 이미 많은 내용을 알려주고 있다.


언제? 춘야春夜, 봄날 밤.

무엇을? 연宴, 파티를!

어디서? 도리원桃李園, 복숭아꽃 오얏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한 화사한 정원에서.

글의 성격은? 서序, 책의 서문. 구체적으로 시집의 서문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밤. 한 무리의 문인들이 복사꽃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가든파티를 열었다. 이 아름다운 풍광에 맛난 술까지 있으니 어찌 멋들어진 시 한 수 읊어 그 감회를 담아내지 않을 수 있으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시를 읊으니, 그러한 시의 장르를 창화시唱和詩라 한다. 이 글은 이를테면 그날 밤 모인 문인들이 공동으로 저작한 시집의 서문序文격에 해당한다.


누가 쓴 서문일까? 이백(A.D.701~762)이다. 왜 그가 썼을까? 무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으므로. 그가 좌장이 되어 술도 권하고 시詩도 써내게끔 분위기를 흥겹게 유도하며 이 글을 쓴 것이다. 시선詩仙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백은 약 60여 편의 문장을  남기고 있다. 대부분 4.6 변문체騈文體로 쓰인 그의 글은 호방하고도 감미로운 그 시의 풍격과 매우 닮아 있다.


이 글도 마찬가지로 4.6 변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절반은 산문이요 절반은 운문인, 중국에만 존재하는 매우 독특한 문학 장르에 속한다. 전문은 117글자. 네 개의 문단으로 나눠진다.




감상의 포인트는 낭송이다. 문학의 참된 가치를 느끼려면 소리로 두드려봐야 한다. 소리는 '결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낭송을 하면 작가와 독자의 정신과 감정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 낭송은 작가와 독자의 정신적 만남의 광장이요,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작가는 언어의 억양과 리듬의 변화를 구사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감을 주입시킬 수 있는 것이며, 독자는 그 문장을 낭송하는 가운데 작가가 창작 시에 느꼈던 분위기와 정감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말 번역도 그 점에 특별히 유의하였으니, 번역문도 그 분위기에 맞춰 자유롭게 소리 내어 읽어보시라. 원문도 우리말 발음을 달아드렸으니 단락 별로 내용과 분위기를 파악하신 후에 낭창한 목소리로 즐겁게 낭송해보시라.


이때 주의할 것! 그중 1/3은 주관적인 독백이요, 1/3은 제삼자의 해설 narration이고, 1/3은 연회에 참가한 후학들에게 하는 말임을 유념하여 그때마다 목소리에 변화를 주어보자. 작가의 정서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우리의 것으로 만든 연후에 낭창한 목소리로 낭송하며 감상하면, 봄날 밤의 눈부시게 화사한 그 정서가 향기로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되어 우리의 마음속에 날아올 것이다.


참고로 맨 마지막에 소오생의 중국어 낭송을 첨부하였으니 어떤 느낌인지 감상해보시기 바란다.




이번에는 원문이 그다지 길지 않으니 사알짝 한자 공부를 해보자. 조금씩 익숙해지면 배움의 즐거움 또한 낭창하게 무르익을 것이다. 물론 한자 울렁증이 있으신 분은 그냥 해설 부분으로 건너뛰어도 전혀 무방하다.



제1 문단 : 꿈처럼 덧없는 우리네 인생.



무릇 천지란 만물이 쉬어가는 객사客舍요, 광음光陰은 영원한 나그네로세.

꿈처럼 덧없는 우리네 인생에 즐거운 순간이 있어봤자 얼마나 될 것인가.

옛사람들이 촛불을 밝혀놓고 밤에 노닌 것도 참으로 다 까닭이 있었구나.



【 원문 】夫天地者, 萬物之逆旅①; 光陰者, 百代之過客②. 而浮生若夢, 爲歡幾何③?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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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① 夫(부): 무릇. 발어사發語詞. 문장의 도입부에서 감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은 어휘.
▶逆旅(역려): 숙소.
② 光陰(광음): 시간. ▶百代(백대): 영원한. ▶過客(과객): 나그네.
③ 而(이): 아무 뜻이 없는 전치사. 여기서는 길게 끌어주며 읽는 것이 낭송의 요령.
▶浮生(부생): 뜬구름 같은 삶. ▶若(약): ~과 같다. as like as.
▶爲歡(위환): 즐거움을 누리다. ▶幾何(기하): 얼마. 얼마인가. 얼마나 되는가.  
④ 秉燭(병촉): 촛불을 들다, 촛불을 밝히다. ▶秉(병)은 쥐다, 잡다, 들다. ▶燭(촉)은 촛불.
▶良(량): 진실로, 참으로. ▶以(이): 여기서는 이유, 까닭.
▶A也(야): A의 사실에 대해 단정을 내리는 뉘앙스의 어조사.

【 감상 요령 】이백의 모든 작품은 언제나 인간 실존의 비극을 반추하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무한한 공, 영원한 시, 그 속에서의 왜소한 인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따라서 이 부분을 감상할 때는 나지막하고 슬픈 목소리로 낭송해 주도록 한다.


【 우리말 낭송 】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이라. 이/부생/약몽이니, 위환/기하 잇고? 고인 병축/야유한 것도, 양유/이야로다. 



제2 문단 : 그러나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따스한 봄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풍경이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소이까!

게다가 이 대자연은 우리에게 문장력을 빌려주지 않았소이까!

복숭아꽃 오얏꽃 만발한 화원에 이렇게 모였으니, 천륜의 즐거움을 펼쳐보십시다 그려!


여기 계신 아우님들,  모두 다 그 옛날 사혜련처럼 빼어난 재주를 지녔거늘,

오로지 내 노래만 보잘것없을 터라, 그 옛날 사령운처럼 부끄럽기 짝이 없소.


【 원문 】 況陽春召我以烟景①, 大塊假我以文章②. 會桃李之芳園③, 序天倫之樂事④. 群季俊秀, 皆爲惠連⑤. 吾人詠歌, 獨慚康樂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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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① 況(황): 하물며. 여기서는 역접/반전의 뉘앙스. 그러나, 하지만. '하물며'의 뜻은 그 뒷부분에 붙여 번역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以(이): 여기서는 '~으로'. ▶烟景(연경):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풍광. 烟(연)은 원래 '연기'이지만 중국고전문학에서는 안개, 아지랑이 등등 기체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지칭한다.  
② 大塊(대괴): 대지. 대자연. ▶假(가): 여기서는 '빌려주다'의 뜻. ▶文章: 문장력, 내력.
③ 會/桃李之芳園(회/도리지방원) : 4.6변문에서 6언일 경우에는 1/5로 끊어서 읽는 경우가 많다. ▶會(회): 만나다. ▶어디서? 桃李之/芳園(도리지/방원), 복숭아꽃 오얏꽃 만발한 정원에서.
④ 序/天倫之樂事(서/천륜지/낙사): 천륜의 즐거움을 펼쳐내다.
▶天倫(천륜): 하늘이 준 생명력. 본능.
⑤ 群季(군계): 여러 아우님들. ▶俊秀(준수): 뛰어나다.
▶惠連(혜련): '형보다 더 뛰어난 아우'의 대명사. 남조南朝 시대의 시인 사령운謝靈雲이 친척 동생 사혜련謝惠連을 칭찬하며, 자기보다 더 훌륭한 동생이라고 칭찬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⑥ 吾人(오인): 나. 이백 자신을 지칭함.
▶康樂(강락): 사령운. 자신을 동생보다 못하다며 부끄러워한 사령운에 비교한 것임

【 감상 요령 】'況(황)'이라는 글자를 강조하며 낭송한다. 사색에 잠겨 어딘지 모르게 슬퍼하는 앞 문단의 분위기가 이 글자를 전환점으로 삼아 활기차게 바뀐다.


여기서 말투에 주의해야 한다. 대부분 한문 깨나 한다는 양반들도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니 오역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걸 모르면 번역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 문단은 이백이 좌중의 나이 어린 문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니 낭송하며 감상할 때도 실제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하는 기분으로 해야겠다. 어떤 뉘앙스인지 소오생의 버전으로 풀이해 드릴 터이니 감을 잡아보시라.


인생이란 게 원래 그렇게 즐거운 일이 별로 없는 법이야. 況(황)! 그렇지만! 지금이 언제라고? 지금은 눈부시게 화창한 봄이잖아! 게다가 우린 글 좀 쓰잖아? 그리구 이렇게 복사꽃 오얏꽃 만발한 정원에 모였잖아. 그러니 하늘이 주신 생명력을 마음껏 신나게 펼쳐내어 보자구. 여러 아우님들 나보다 훨씬 재주 많잖아, 그치?


【 우리말 낭송 】황! 양춘 소아이/연경이요, 대괴 가아이/문장이라. 회/도리지/방원이요, 서/천륜지/낙사라. 군계 준수하여, 개위/혜련인데, 오인/영가 독참/강락이구나.




제3 문단 : 달님도 취해 버렸구나!



저마다 그윽하게 꽃구경을 하는구나. 어느새 모두 모여 맑은 담소 나누도다.

꽃밭 사이 자리 잡고 연회를 베푸는데, 술잔이 날아다니네. 달님도 취해버렸네!  


【 원문 】幽賞未已①, 高談轉淸②. 開瓊筵以坐花③, 飛羽觴而醉月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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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① 幽賞(유상): 그윽하게 감상하다. ▶未已(미이): 아직 끝나지 않다.
▶幽賞未已(유상미이): 혼자 사색에 잠겨 꽃구경을 하는 모습.
② 高談(고담): 고담준론. 여럿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轉(전): (분위기가) 바뀌다. 여기서 주의! 이 작품은 절반은 산문이지만 절반은 시다. 문법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즉, 고담준론을 나누던 분위기가 '맑게(淸)' 바뀌었다는 게 아니다. 그 앞부분, 幽賞未已(유상미이), 즉 혼자서 꽃구경하던 분위기가 여럿이 대화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③ 瓊筵(경연): 연회. 파티.
④ 羽觴(우상): 羽(우)는 날개. ▶觴(상)은 술잔. 술잔에 날개가 달린 듯 여기저기 잔을 권하는 모습.

【 감상 요령 】이 문단은 제3자인 내레이터가 좌중의 상황을 중계방송하듯 알려주는 부분이다. 각자 조용히 무드 잡고 꽃구경을 하는 장면. 이윽고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 본격적으로 파티가 시작되더니 이윽고 술잔을 주고받으며 흥겨운 분위기가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낭송을 할 때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해야 한다. 객관적인 화자話者의 목소리로 처음에는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그러다가 점차 성량을 키우면서 하이톤의 신이 난 목소리로 낭송하는 게 요령이다.


【 우리말 낭송 】유상 미이하니, 고담 전청이라. 개/경연이/좌하하더니, 비/우상 취월이로다!  




제4 문단 : 노래야 나오너라, 쿵 짜자 쿵작!



멋들어진 시 한 수 읊어내지 못한다면 이 좋은 정취를 어떻게 펼쳐내리?

차례가 되었을 때 지어내지 못한다면, 금곡원 숫자 대로 벌주를 내리리라!


【 원문 】不有佳作, 何伸雅懷?① 如詩不成, 罰依金谷酒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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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① 伸(신): 펼쳐내다. ▶雅懷(아회): 그윽한 정취. 좋은 느낌.
② 依(의)A: A에 근거하여 ▶金谷酒數(금곡주수): 남조南朝 시대 진晉나라에 후세에 부자富者의 대명사가 된 석숭石崇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금곡원金谷園이라는 커다란 정원이 있었는데, 여기서 연회를 베풀며 시를 제 때 못 짓는 사람에게 벌주 세 말을 마시게 했다고 한다.

【 감상 요령 】대학생들이 MT를 가서 술자리를 가질 때 "노래야 나오너라 쿵 짜자 쿵작,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쿵 짜자 쿵작" 흥을 돋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좌장인 이백이 다시 좌중을 둘러보며 잔뜩 분위기를 돋우면서 호쾌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라는 점에 유의하여 낭송해 보자. 흥겨움에 둠칫둠칫 저절로 어깨 팔을 휘젓게 되리라.


【 우리말 낭송 】불유/ 가작이면 하신/ 아회잇고? 여시/ 불성이면, 벌/의/금곡주수하리라!




[작품 감상] 비극 역시 초대받은 축복이라!



때는 양춘가절의 따사로운 봄날 밤.


예부터 양춘삼월이라 하였으니, 양력으로 치자면 사월 중순에서 오월 초가 절정일 터. 이 눈부시게 화사한 봄날, 이백은 여러 시인묵객들과 함께 복숭아꽃 오얏꽃이 흐드러지게 만발한 화원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다. 천하제일의 풍류객, 귀양 나온 신선 이태백이 어찌 이 화사한 봄날 밤의 감회가 없을쏘냐!


그러나 이백은 미치광이 같은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인간 실존의 비극성을 그만큼 철저히 깨닫고 있는 사람도 드물지 모른다. 무한한 공간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왜소함과 무능함을 서글프게 읊조리는 것으로 그 대부분의 작품이 시작하는 것도 이백의 그러한 현실 인식에서 기인한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이백의 매력은 그가 결코 나약한 감상에만 빠져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삶의 즐거운 요인을 찾아내어 만인에게 흥겨움을 선물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간 실존이 제아무리 비극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초대받은 축복 아니던가? 덧없이 짧기만 한 우리네 삶이라 하더라도 기왕지사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이라면 그 속에서나마 최대한 즐거움의 공약수를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이 봄날 밤만이라도 인간 본연의 자유로운 생명력을 만끽해야 하지 않겠는가?


호쾌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백의 이러한 감회는 얼핏 보면 허무주의 또는 쾌락주의와 몹시 닮아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이란 결코 퇴폐가 아니라, 자유로운 생명력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99%의 괴로운 삶 속에서 1%의 즐거움을 찾아내고자 하는 진정한 낭만임을 유념해야 하겠다.


이백은 이 짧은 문장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먼저 독백의 수법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에 빠져 서글퍼하기도 하고, 객관적인 내레이터로 변신하여 자신의 삶을 관조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하며, 자신의 심정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이 어린 군중 속에서 타인의 즐거움을 위해 흔쾌히 함께 어울리기도 한다. 귀양 나온 신선 이백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 중국어 낭송 】낭송: 소오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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