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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r 31. 2024

20. 진주는 눈물 흘리고 구슬은 연기 되어 흩어지네

설악산 신흥사 명부전에서  

지난 3월 24일. 대만에서 두 친구들이 4박 5일 일정으로 묵호에 왔다. 한 명은 한국인 M교수. 나와는 소싯적부터 막역했던 죽마고우다. 또 한 양반은 M교수대만 친구 C교수다. 한국은 잠깐 서울에 들렀던 게 전부란다. 설악산에 대단한 기대를 걸고 온 모양이다. 나는 숙박업소 매니저, 현지 가이드, 운전 기사, 사진 촬영, 요리사 등 중책을 겹쳐 맡게 되었다. 걱정도 내 몫이다. 머무는 내내 날씨가 너무 안 좋을 것 같다.

 

3월 25일. 설악산을 찾았다. 비를 맞으며 토왕성폭포 전망대를 올라갔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토왕성폭포는커녕 인근의 봉우리조차 모습을 감췄다. 공연히 미안해진다. (토왕성폭포는 다음날 폭설이 그친 후, 3Km 떨어진 설악동에서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 능선의 좌측 1/3 지점에서 300m 높이로 떨어지고 있다.)

낙산사를 갔다. 바람이 엄청나게 강하게 분다. 얼마나 추운지, 평소 인파에 덮혀 사진 한 장 찍기 어렵던 의상대와 홍연암 일대가 텅텅 비어있다. 흉용洶湧한 파도가 해안 절벽에 부서진다.  

텅텅 빈 경포대를 들러, 텅텅 빈 묵호 전통시장에 도착하니 밤이 늦었다. 테이블 하나밖에 없는 허름한 집. 그러나 가성비 최고의 맛집에서 포만감을 맛본다.


3월 26일, 이틀 째 설악산을 찾았다. 묵호에서 설악산으로 가는데 눈이 펑펑 쏟아진다. 두 친구는 뻗어자고 나홀로 걱정이 태산이다. 시야도 흐리고 바람도 강하니 운전하는 것도 신경이 쓰이고, 오늘도 설악산 절경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아서 조바심이 난다.


설악동에 도착하자 눈이 조금씩 그쳤다. 엄청난 장관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수없이 여기 왔지만 처음보는 설경... 온 천지가 그대로 산수화의 한 장면이다. 황홀하다. 정신을 못 차리겠다.

내가 이러니 대만에친구들은 오죽하겠는가. 미국 유학 당시 눈을 본 적이 있다는 대만 친구 C교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만에 돌아가서 자랑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이 근질대는 모양이다.

 

낮이 되니 눈도 그치고 시야도 점점 깨끗해졌다. 신흥사를 찾아갔다.

권금성에서 내려다 본 신흥사
신흥사에서 올려다 본 권금성

M교수는 몇 년 전 상처喪妻했다. 안사람은 결혼 전부터 나도 잘 알고 지내던 미인이다. M교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지은 죄가 많은 지라 그 비통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늘 스위스에 같이 갈 사람 한 명 있었으면 혼자 중얼거렸다. 스위스는 안락사가 허용된 나라다. 툭하면 그 좋은 집 놔두고 스무평 우리집에 와서 마룻바닥에서 뒹굴며 내가 해주는 따순 밥 먹고 지내더니만, 급기야 아예 이 땅을 떠나 혼자 대만에 가서 살고 있다.


명부전에 왔다. 가운데 모셔진 보살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의 보살이다.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남아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원하겠노라 서원誓願했다는 사랑의 화신이다. 그래서 명부冥府의 주인은 염라대왕이 아니라 지장보살이다. 머리가 녹색이어서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설명해주니 M교수가 절을 드리고 싶어한다. 무릎 관절이 안 좋은 것을 아는지라 극진한 마음으로 삼배만 올리라 했다. 나도 옆에서 헝클어진 마음을 간절하게 한데 모아 합장 기도를 드렸다. 공연히 눈물이 흐른다.


교수님, 어찌 그리 잘 아슈? 깜짝 놀라 바라보니, 명부전을 정리하고 계시던 한 보살님이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중얼거리듯 말을 걸어오셨다. 교수인줄은 또 어찌 아셨담? 알긴 뭘 안답니까. 《법화경》 열 번 사경하겠다 해놓고 이제 겨우 여덟 번 반 썼는 걸요. 


방금 전 간절한 마음 그대로 모아 합장 인사 드렸더니, 정중하게 합장 인사로 답해주신다. 이제야 바라본 그녀의 눈가가 웬지 촉촉해 보인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나고, 보살님도 다시 종종 걸음으로 본당으로 가신다.

그때였다. 보살님이 무언가를 들고 뛰어 오시더니 내 손에 쥐어주신다. 드릴 거는 없고... 그리고는 얼른 사라지신다. 사탕 세 알이었다. 가슴이 뭉클하다. 주책없이 또 눈물이 흐른다. 짐짓 먼 곳을 쳐다본다. 신흥사 뒷산 너머 파란 하늘이 나타나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은 떠나가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밀린 잠을 자고 일어나 밀렸던 글을 쓰기 시작한다. 평범의 진리를 생각하며... 집착하지 않는 사랑, 소유하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쓸 차례다. 집착이란 결국 찰나에 대한 집착이다. 거시적으로 세상을 넓고 크게 바라보면 모든 것은 찰나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질없이 그 찰나에 집착한다. 그 얘기를 어떤 작품을 예로 들어 전개할 것인지 오래오래 생각한다. 대문에 걸 이미지도 문제다. 이것저것 찾아보느라 애꿎은 시간만 하염없이 간다.


누차 이야기하지만 보노 작가님 이미지는 정말 좋다. 커다란 화면에 한 장씩 띄워놓고 한참을 음미하다 보면 온몸이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다. 이 생각 저 생각 궁리 끝에 사진 한 장만 쓰게 해주실 수 없느냐고 간청을 드려보았다. 어떤 사진을 쓸 것인지 궁금하시단다. 나도 궁금했다. 내 글에 인용하려는 작품과 어울리는 이미지여야 하므로. 고민 끝에 아래의 이미지를 골라보았다. <새들은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지고>.

그런데 글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 평소에도 아날로그 글쓰기지만 이번에는 심했다. 하염없이 장광설이다. 오죽하면 강가 개울가 이지성 작가님이 참다 못해 그러나 따스한 격려말로 예리하게 짚어주셨을까. ^^;;  글쓰기 성향도 이유가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시간 부족 때문이다. 다듬으면서 90%를 지워나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보노 작가님이 새 글을 올렸다. 작가님은 보통 토요일에는 글을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웬 일일까. 글 이름은 <공전>. 문해력 부족 탓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 명부전? 내가 다녀온 그 명부전? 몇 번이고 읽어봐도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가 틀림없어 보인다. 작가님을 알고 지낸 건 두 달 정도? 그러나 평생 지기인 느낌이었는데 그런 작가님에게 이런 아픔과 슬픔이 있었다고?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잠시 잊고 있다가 불현듯 몰려오는 그 압도적인 슬픔이라니... 어느 순간, 그 마음이 그대로 전이되어 온다. 갑자기 콕콕, 누군가 바늘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다. 그 압도적인 슬픔과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하나. 방법이 없다. 아플 때는 그냥 아파야 한다. 슬플 때는 하염 없이 슬퍼야 한다.




중당中唐 시대의 시인 이상은李商隱(812~858)이 생각난다. 그가 지은 무제시無題詩 생각이 난다. 후세 사람들이 다른 무제시와 구분하기 위해 맨 앞의 두 글자를 따서 <금슬 錦瑟>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바로 그 시다. 그런데 '금슬瑟'이 아니라 '금슬瑟'이다. '금슬琴瑟'은 한 쌍의 크고 작은 거문고(또는 비파)를 말한다. 그래서 부부 사이의 상징이기도 하다. 근데 이상하다. 시인은 일부러 '비단 금錦' 자를 사용했다. 그 님과 함께 보냈던 그 시절이 비단처럼 보드랍고 황홀했다는 뜻일까?


이상은의 시는 대체로 애매하고도 모호하다. 인생이 그러하듯이. 특히 이 시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이 그러하듯이. 무슨 뜻인지 설왕설래 논쟁이 분분하다. 하지만 대체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도시라는 게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아내가 꼭 아니면 어떠하랴. 아무튼 시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그 님을 그리워하는 것임에는 틀림없겠다. 내 친구 M교수에게, 보노 작가님에게, 소중한 님을 떠나보낸 이 세상 모든 슬퍼하는 님들에게 이 시를 낭송해드린다. 슬퍼할 때는 하염없이 슬퍼해야 하므로...



그대 남기고 간, 비단 같은 저 비파...

무슨 사연 그리 많나, 줄도 많아 오십 현絃.

한 현絃, 한 과棵마다 그립고 아름다운 날들이여!

錦瑟無端五十絃,   금슬/무단/오십현

一絃一柱思華年。일현/일주/사화년


장주莊周는 나비 되어 새벽 꿈을 헤매고

망제望帝의 한恨을 우는 두견새의 봄이여.

莊生曉夢迷蝴蝶,    장생/효몽/미호접

望帝春心托杜鵑。 망제/춘심/탁두견


검푸른 바닷가 달은 밝아서

진주는 하염없이 눈물 흘리고,

파아란 들판에 해는 따사로워

구슬은 연기되어 흩어지네.

滄海月明珠有淚,   창해/월명/주유루

藍田日暖玉生煙。 남전/일난/옥생연


지금의 이 심정,

어찌 추억이 될 그 날까지 기다리랴!

이미

그 날 그 때부터 꿈인가 싶었노라.

此情可待成追憶!  차정/가대/성추억

只是當時已惘然。지시/당시/이망연


방법이 없다. 검푸른 바닷가에 달은 밝은데, 진주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지 않는가! 파아란 들판에 해는 따스하기만 한데, 구슬은 연기가 되어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지 않는가. 그러니 방법이 없다. 아플 때는 아파야 한다. 슬플 때는 슬퍼야 한다. 통곡할 때는 통곡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마시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어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잊지 마시라.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부처님까지도 그대와 함께 울고 계신다는 사실을.

그러니 잊지 마시라.

그것이 이 세상 모든 이들의 평범한 삶, 평범한 만남과 이별일 지니, 결코 마음까지 다쳐서는 아니된다는 사실을.


하나 더, 잊지 마시라.

오늘은 부활절이라는 사실을...


오늘을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설악산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눈발을 뿌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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